♬ 예수님의 품성 ♬
2008년 04월 13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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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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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교회 생활도 오래 하시고 믿음 좋으신 어느 집사님이 혼잣말처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제대로 믿기 참 힘들다.”
성경을 보아도 사도 바울을 비롯하여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이나 많은 선지자들을 보면 결코 안락한 생활을 하지 않았으며, 예수님 스스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 19:27)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0:34~39)
뿐만 아니라 옛 율법에서는 살인하거나 간음한 자를 벌하라고 되어 있는데 사람을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하며 (요일 3:15),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이마다 이미 간음하였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마 5:28). 이와 같은 말씀을 보면 정말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잠깐. 성경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 11:30)
예수님은 우리를 힘들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도 아니며 오히려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편하게 쉬게 하리라는 말씀과 위에 있는 말씀은 서로 반대되는 말씀일까 하는 것이 제 의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부분의 경우처럼 “성경에서 비롯되는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은 모두 성경에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말씀은 꼼꼼히 읽어봐야 하더군요.
마태복음 11장에 나오는 말씀을 조금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므로 바로 이 ‘온유함’과 ‘겸손함’을 배우면 우리 마음이 쉼을 얻는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면서 때로는 힘들고, 그리고 때로는 지치는 이유는 바로 이 온유함과 겸손함을 배우는 과정이라서가 아닐까 합니다.
일례로 보자면 신약에서 부자 청년에게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난 후 나를 따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갔으나 (마 19:21 막 10:21 등), 엘리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산인 소의 기구를 불살라서 소를 잡고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한 후 엘리야를 따름으로써(왕상 19:21) 장차 선지자로 높임을 받고 맡은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재물이 많다는 것이 죄가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재물이라면 그야말로 축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재물로 말미암아 때로는 온유함과 겸손함을 배우는 데에 장애가 될 수도 있으므로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힘들다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막 10:25 등).
예수님의 성품인 온유함과 겸손함을 주님 앞에서 깨닫고 행할 때에 비로소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이른바 십자가 계명인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인간의 힘 만으로 이 세상 모든 일을 헤쳐 나아가려 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놀라운 능력과 깊은 사랑을 깨달을 수 없으며 우리가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해질 때 비로소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온유함을 본받고 실천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또 다른 걸작품인 우리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다름아닌 천국의 모습일 것이며, 때를 얻든 얻지 못하든 복음을 전파하고(딤후 4:2) 주님의 품성을 실천해 나아간다면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의 영혼 구원이시며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영적으로 ‘온유함과 겸손함’ 즉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에 있겠으나, 문제는 사람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악하며(창 6:5), 나약한 존재라는 점입니다. 이 사실을 두고 한없는 괴로움을 바울은 몇 번에 걸쳐 표현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4)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바울조차도 자신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죄성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았을 정도이니 일반 우리들은 오죽할까요. 결국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예수님의 온유함과 겸손함에 다가갈 수 없으며 의지할 곳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는다고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6)
예수님은 인간의 죄성과 나약함을 알고 계시며, 그렇기에 성령님도 우리를 위해 기도로 간구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믿고 성령님과 영적인 기도로 동행하며 그 은혜를 의지하고 갈망할 때에 우리는 주님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얻게 되어, 이제는 더 이상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일이 힘들거나 괴로움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나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과 감사와 평안으로 충만해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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