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냐 사슴이냐 ♬
2009년 05월 24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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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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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녹정담(鹿政談)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외국 한 고을에서는 옛날에 사슴을 매우 귀중히 여기던 시절이 있었으며, 조금 손찌검만 해도 무거운 벌금, 만약 잘못해서 죽이기라도 한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극형에 처해지곤 했습니다. 그런 시대에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두부 가게를 운영하던 노부부가 있었는데, 그날 아침에도 여느 때처럼 두부를 만들고 있었더니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옵니다. 깜짝 놀라 나이 든 주인이 나가보니 불그스름한 개 한 마리가 ‘비지’를 담아둔 통 안에 머리를 넣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침부터 개가 장사밑천을 먹고 있다는 사실에 사뭇 기분이 상했기에 근처에 있던 장작 하나를 집어 던졌더니, 아뿔싸, 머리에 명중하자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정통으로 맞추려는 생각이 없었던 노인이 황급히 다가가서 일으켜 세우려 하자 그만 넋이 나가고 맙니다. 그것은 붉은 개가 아니라 사슴이었기 때문이죠. 아무리 살려보려 해도 가망이 없습니다. 이제 날이 밝아 오기에 그대로 놓아둘 수도 없어 하는 수 없이 관하에 신고를 합니다.
체포된 노인은 재판을 받게 되는데, 당시 그 고을에는 지혜롭기로 소문난 판관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사슴이 귀히 여겨지고 있었다고는 하나, 판관도 사슴 한 마리 때문에 고개를 푹 숙이고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노인에 대해 극형으로 벌하기를 원치 않았기에 “태어난 곳은 어디냐”, “어디 몸이 불편한 곳은 없느냐” 하고 조금이라도 죄를 경감해주려는 빌미를 찾아보지만 워낙 정직한 노인이라 모든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합니다.
“저희는 대대로 이 고장에서 살아왔으며 저도 여기서 태어났습니다. 병도 없습니다. 저는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남은 할멈한테만은 자비를…….”
이렇게 되니 판관은 난감해집니다. 고민 끝에 그는 측근한테 죽은 사슴을 가져오라고 명합니다. 운반해온 사슴을 가만히 바라보던 판관이 한 마디 합니다.
“이건 사슴이 아니군. 개야.”
그리고는 말을 잇습니다.
“사슴한테는 뿔이 있어야 하는데 이 놈한테는 뿔이 없지 않는가. 개를 죽였다면 처벌 대상이 아니니 이 재판은 기각하기로 한다.”
모두들 탄복해서 주변에 있던 측근들도 “정말 개처럼 보이는군요.” “‘멍멍’하고 짖는 소리를 들었다니까요.” 이런 말들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 결과에 항의하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노인을 체포한 사슴 담당관이었습니다.
“판관님답지 않으십니다. 저는 아직 사슴과 개를 혼동할 정도로 노망이 들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살펴 주십시오. 사슴은 매년 봄에는 새싹을 먹기 때문에 뿔이 떨어집니다.”
판관은 이 말을 듣고 또다시 고민에 빠졌으나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매년 나라에서 사슴 관리를 위해 3천냥이 지급되는데, 현재 파악된 사슴 수로 볼 때 이 자금이라면 사슴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슴들이 굶주려서 동네를 기웃 거리며 먹이를 찾아 다녔다면 이는 사슴 담당을 맡고 있는 누군가가 그 돈을 착복했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야. 만약 그 사실이 밝혀진다면 이는 중벌로 다스려야 마땅하지 않는가. 그렇게도 이 재판을 계속하고 싶다면 우선 사슴 관리금을 횡령한 자를 가려내야 할 터 인데…….”
이 말을 들은 사슴 담당관은 얼굴이 파랗게 질립니다. 사슴을 관리하고 있는 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판관은 또다시 묻습니다.
“어떤가? 이는 개냐, 사슴이냐?”
“개이옵니다!”
이로써 지혜로운 판관 덕분에 노인은 무사히 석방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사 38:17)
우리의 죄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닌 우리 죄를 판단하시는 분의 몫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해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지은 것이 ‘죄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우리를 ‘죄인으로 여기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시 32:5)
주님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진정한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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