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유를 원하시는 하나님 ♬
2010년 03월 14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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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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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TV를 보니 이른바 ‘무소유’가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어떤 글인가 하고 읽어보았습니다. 내용인즉 본인이 정성스레 키우던 난초가 어느 날 실수로 시들해지자 마음이 괴로워졌으며, 그 괴로움은 곧 난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생겼기에 이를 깨닫고 바로 다른 분한테 그 난초를 넘겨주고는 하루에 한 가지씩 버리기로 했다는 내용입니다.
또한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는 간디의 말을 인용하며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서점에서는 이와 관련된 책이 품귀현상까지 일어나고 있으며,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라고 한 다른 종교인의 말까지 인용하며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내용을 보면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내가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 들어갔을 것이며, 만약 내가 일자리를 구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 구했을 것이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과연 무소유만이 능사일까.”
성경에는 분명 부유한 자에 대한 경고가 있습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약 5:1)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눅 18:28)
그러나 항상 ‘부자는 나쁘다’는 말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니라” (잠 10:15)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잠 22:7)
또한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이나 야곱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재물이 풍성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창 24:35, 31:1)
다시 한 번 위에서 언급한 ‘무소유’에 대해서 살펴보면 그 글에서와 같이 인간의 역사는 소유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많은 것을 필요로 하고 많은 것을 소비합니다. 많은 것을 갖기 원하며 또한 이를 많이 늘리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고 소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내용은 일견 타당성을 띤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의 내용을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창 1: 29)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가장 처음으로 하신 사람에게 하신 일은 복을 ‘주시고’,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홍수가 끝나고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에서 나왔을 때 역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창 9:3)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며 일용할 양식과 평강을 주셨고 사랑을 주셨으며 나아가 인간의 속죄제물로서 독생자 예수님까지 아낌 없이 주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 7:7)
어떤 목사님께서 “만약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주시는 좋은 옷과 가락지와 신을 거절하고 끝까지 품꾼으로 남겠다고 했다면 이는 교만”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분명 탕자가 행한 일 중에서 잘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아버지에게 돌아왔을 뿐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큰 축복을 탕자가 감사히 받음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지위를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고 하나, 여기서의 욕심이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을 탐하는 마음”입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대하 4:10)라는 야베스의 기도를 허락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 축복으로 인하여 우리가 이를 누리고 감사드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주신 분이 계시기에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 속의 소유를 감사함으로 넉넉히 늘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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