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된 선한 이웃 ♬
2011년 03월 20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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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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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누가복음 10장 30절에서 37절에는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비유가 있습니다. 이는 ‘이웃’에 대한 율법교사의 질문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여기서는 봉변을 당한 사람을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과 같은 이방인이나 하는 말씀이 없이 그저 ‘어떤 사람’이라고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차례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첫째는 제사장이요, 둘째는 레위인, 그리고 셋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기록합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모두 하나님의 성전을 관리하는 자요, 하나님의 가르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나 그들은 강도를 만난 ‘어떤 사람’을 보고 하나같이 피하여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들이 피한 이유를 말씀하지는 않으셨으나 율법을 많이 아는 사람들이었기에 어쩌면 그 ‘어떤 사람’을 이미 죽은 것으로 알고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민 19:11)라는 말씀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제사장과 레위인은 율법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 나름대로 지키려 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어떤 사람’이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사람인지, 어찌하여 그와 같은 환난을 겪었는지도 알려고 하지 않고 과분할 정도로 보살펴줍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는 질문에 “네 이웃은 여기서의 사마리아 사람이다”가 아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말씀으로 답변을 대신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라고 합니다. 머리로는 수많은 생각을 할 수는 있으나, 가슴으로 받아 안고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그렇게도 어렵다는 뜻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가장 짧은 거리는 어디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생각건대 이는 ‘머리에서 입까지’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우화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남에게 충고하는 일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다.” 되돌아보면 우리는 얼마나 깊은 사려 없이 머리에서 떠오르는 말들을 되풀이해왔는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머릿속 율법에 얽매이는 것도 정죄하는 것도 아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이라 믿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 모두가 ‘참된 선한 이웃’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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