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하게 쓰임 받는 금 그릇 ♬
2014년 10월 12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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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선교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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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에 4:14)
이 구절은 하만에 의한 유다 민족 대학살이 눈앞에 닥치자 모르드개가 그의 삼촌의 딸이며 왕후인 에스더에게 전한 말입니다. 이에 대해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는 말로 회답하고 3일 금식 후 목숨을 걸고 아하수에로 왕 앞으로 나아가, 마침내 하만의 모략을 저지하고 그를 나무에 매다는 쾌거를 이루어 내게 됩니다.
모르드개에 의한 본 구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것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려 했으나 언약을 어기고 아벨로 이어지게 되는 구원의 역사는 가인의 살해로 인하여 셋에서 노아로 이어집니다. 당대에 완전한 자라 일컬어졌던 노아는(창 6:9) 전세계를 뒤덮은 홍수에서 살아남고 그에게서부터 다시 인류 역사는 시작됩니다. 이윽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게 되고, 그 후로는 이삭과 야곱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확장시켜 가셨으며, 모세를 통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게 하시고는 사사 시대를 거쳐 사울로 시작되는 왕조 시대를 열게 됩니다. 하지만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게 되자, 촛대를 그에게서 다윗으로 옮기시고 또다시 역사는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하란 땅에서 부르셨을 때, 만약 그가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민족이란 없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봅니다. 아브라함이 거절하였다면 분명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셨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이 따르지 않았다면 역시 다른 이들에게 사명을 맡기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다른 민족과는 다르다고 하는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교만에 빠져있던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십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9)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이유 또한 우리 스스로가 훌륭한 가문이나 많은 재산, 사회적 지위 등을 가져서가 아니라, 이미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엡 1:4).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를 살펴봅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 2:19~2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나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하게 쓰이는 금 그릇이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퇴장송을 부를 때 찬양대 앞에 펼쳐지는 현수막에 적힌 “주가 쓰시겠다 하라”는 말씀(마 21:3, 막 11:3, 눅 19:31)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불의에서 떠나 주님께서 쓰시겠다는 부름에 순종할 때, 금 그릇처럼 귀하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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