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9회 우상을 물리치라
2020년 11월 8일 설교 (로마서 강해 10)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장 21절~25절 신약 240페이지
“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ローマ人への手紙1章21節~25節
“21.彼らは神を知っていながら、神を神としてあがめず、感謝もせず、かえってその思いはむなしくなり、その鈍い心は暗くなったのです。
22.彼らは、自分たちは知者であると主張しながら愚かになり、
23.朽ちない神の栄光を、朽ちる人間や、鳥、獣、這うものに似たかたちと替えてしまいました。
24.そこで神は、彼らをその心の欲望のままに汚れに引き渡されました。そのため、彼らは互いに自分たちのからだを辱めています。
25.彼らは神の真理を偽りと取 り替え、造り主の代わりに、造られた物を拝み、これに仕えました。造り主こそ、とこしえにほめたたえられる方です。アーメ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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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한 달에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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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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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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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0번째 시간으로서 “우상을 물리치라” 偶像を退けよ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본문 중에서 먼저 로마서 1장 24절부터 살펴보고자 합니다.

로마서 1장 24절
“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そこで神は、彼らをその心の欲望のままに汚れに引き渡されました。そのため、彼らは互いに自分たちのからだを辱めています。

여기서 <그들>이라고 하는 것은 앞서 로마서 1장 18절에 나오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잘못된 길로 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꾸짖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나님께서 잘못 가고 있는 우리를 꾸짖으시는 것은, 그럼 좋은 것일까요? 아니면 안 좋은 것일까요?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잠언 3장 11절~12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잠언 3장 11절~12절
“11.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12.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 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わが子よ、主の懲らしめを拒むな。その叱責を嫌うな。
父がいとしい子を叱るように、主は愛する者を叱る。

사람이 자동차나, 아니, 자전거라도 좋습니다. 자동차나 자전거를 운전하고 있을 때, 똑바로 가야 하는데 자꾸 삐뚤 빼뚤 가려고 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빨리 어떻게 핸들을 돌려서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바른 길로 가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징계이자 꾸지람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때 꾸지람을 들으면 마음이 괴롭고 힘들게 느껴질 수 있겠습니다만, 하나님의 징계와 꾸지람이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님께서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고 계시다는 증거인 것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주고 계시다는 뜻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24절에 보면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로마서 1장 24절
“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そこで神は、彼らをその心の欲望のままに汚れに引き渡されました。そのため、彼らは互いに自分たちのからだを辱めています。

이는 뭐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지요. 여기서 정욕대로라고 하는 것은, 자기에게 해가 되더라도, 아니면 주위 사람에게 해가 되더라도 아무런 상관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뭐, 도박이다 마약이다 하는 데에 돈을 펑펑 씁니다. 가족이나 이웃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만약에 이런 상황이 되어버렸는데도 그대로 내버려두고, 아무도 거기서 건져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인생은 보나마나 이제 끝난 것이지요. 큰일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24절에 보면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汚れに引き渡されました。そのため、彼らは互いに自分たちのからだを辱めています。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몸을 더럽힌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간음을 말합니다. 이 간음이라고 하는 것은 로마서에서뿐만 아니라 신구약을 불문하고 많은 부분에서 언급된 내용입니다만, 그렇다면 간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는 뭐 대표적인 예로 남녀간의 불륜관계를 생각할 수가 있겠지요. 미혼남녀가 서로 좋아하고 사랑을 하는 것은 아름다울 수가 있겠습니다만, 그 중 한쪽이나 아니면 양쪽에게 이미 결혼한 배우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거나 하는 것은, 이는 대단히 부적절한 관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간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성경에서 언급되는 간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외에도 또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훨씬 더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만,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자, 이제 벌써 11월달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올 한해 어떠셨습니까. 이제 어느덧 2020년도 저물어 갑니다만, 다가오는 2021년, 여러분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고 싶으십니까.

이렇게 물으면 좀 답하기 곤란하시죠?

혹시 여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돈은 받기 싫다고 하시는 분 계신가요? 예, 아마도 없으실 것입니다.

만약에 난 정말 필요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돈을 많이 주셨어요. 그런 분이 계시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요? 예, 그냥 버리지 마시고, 꼭 필요로 하는 우리 이웃들을 위해서 귀하게 써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사실 집도 좋고, 차도 좋지만 일단 돈만 있으면 좋은 집도 살 수 있고 좋은 차도 살 수 있잖아요. 가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분들 보면 체면을 차리시려고 하는 분들이 계신데, 글쎄요. 하나님 앞에서 체면을 차리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리면 항상 성령충만 은혜충만만 기도해야 하나요? 어차피 주변 사람이 듣는 것도 아닌데, 아휴, 주님, 거 돈이 너무 없네요. 나가야 할 돈은 많은데 돈이 도무지 들어오지 않아요. 돈 좀 채워주시옵소서……이런 기도가 잘못된 건가요? 아니에요. 물론 과다한 욕심을 부리면서 100억을 주시옵소서 1000억을 주시옵소서 그러면 글쎄요.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만, 우리가 기도를 드릴 때에 체면을 차릴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정말 어린 아이처럼 솔직하게 말씀 드리는 기도도 예수님께서는 기쁘게 받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솔직히 그렇잖아요. 물론 성령충만, 은혜충만도 좋지만, 돈도 좀 넉넉히, 그야말로 타락하지 않을 정도로 주셨으면 참 좋겠지요.

자,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만약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무언가를 받고 싶다고 하면, 여러분께서는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설마 돈이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고 싶어하시나요? 그러면 돈을 주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으실 건가요? 만약에 그런 관계라고 한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지요.

그렇다면 입장을 바꾸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받고 싶어하실까요. 하나님께서도 우리한테 돈을 받고 싶어하실까요?

여러분, 하나님이 거지입니까. 하나님이 가난하신가요?

역대상 29장 11절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主よ、偉大さ、力 、輝き、栄光、威厳は、あなたのものです。天にあるものも地にあるものもすべて。主よ、王国もあなたのものです。あなたは、すべてのものの上に、かしらとしてあがめられるべき方です。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만이 아니라 온 천하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무엇을 받고자 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받고 싶어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음? 그렇다면 마음만 드리며 되겠네. 그런데 왜 교회에서는 십일조다 헌금이다 하면서 돈을 내래?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16장 16절~17절
“16.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16.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17.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あなたのうちの男子はみな、年に三度、種なしパンの祭り、七週の祭り、仮庵(かりいお)の祭りのときに、あなたの神、主が選ばれる場所で御前に出なければならない。主の前には何も持たずに出てはならない。
あなたの神、主が与えてくださった祝福に応じて、それぞれ自分の贈り物を持って出なければならない。

성경에는 하나님을 만나러 나올 때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わざわいだ、偽善の律法学者、パリサイ人。おまえたちはミント、イノンド、クミンの十分の一を納めているが、律法 の中ではるかに重要なもの、正義とあわれみと誠実をおろそかにしている。十分の一もおろそかにしてはいけないが、これこそ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だ。

아니, 온 천하만물이 하나님 것이라면서 꼭 이렇게 가난한 나한테까지 십일조나 헌금을 내라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건 어려운 질문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6장 21절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あなたの宝のあるところ、そこにあなたの心もあるのです。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돈, 재산 아닙니까.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가장 아끼는 물질 중 하나인 보물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굳이 이렇게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그 마음을 받고 싶은 것이지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기를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 아니겠습니까.

이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받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도 똑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또 누군가가 우리의 마음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마귀 사탄인 것입니다. 마귀 사탄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우리의 마음을 가로채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러면 마귀도 하나님처럼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을 가로채려고 하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마귀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우리의 죽음, 우리의 파멸입니다.

이는 창세기에서부터 나타납니다.

창세기를 살펴보기 전에 자, 오늘의 질문입니다. 오늘은 선택지가 없습니다. 주관식이지만 단어를 묻는 질문입니다.

여러분께 누가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이란 무엇입니까> 좀 어려운 질문이지요? 하나님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누군가가 물으신다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무엇무엇이다>라고 하면 그 빈칸에 무엇이 들어가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다. 물론 맞습니다. 요한1서 4장 16절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믿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주시지만, 안 믿는 사람에게는 심판을 내리십니다. 그렇다면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사랑이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십자가다. 예, 그것도 맞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이 안 계셨나요? 아니요. 계셨습니다. 그럼 예수님 전의 하나님은 무엇입니까.

사실 어려운 질문은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질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初めにことばがあった。ことばは神とともにあった。ことばは神であった。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곧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온 천하 온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이는 말씀만 하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요, 하나님 말씀을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첫 율법을 주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창세기 2장 16절~17절입니다.

창세기 2장 16절~17절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神である主は人に命じられた。「あなたは園のどの木からでも思いのまま食べてよい。
しかし、善悪の知識の木からは、食べてはならない。その木から食べるとき、あなたは必ず死ぬ。」

이것이 바로 인류의 첫 율법이었던 것입니다. 이를 두고 누구는 말합니다. 하나님도 참 너무하시다. 아니, 먹으면 안 되는 나무를 왜 굳이 만들어가지고서는 사람을 유혹하셨을까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이유는,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순종함으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지으시고, 이를 먹지 말라고 하는 명령을 사람에게 주셨을 때, 이 말씀을 따라서 사람이 먹지 않는다면, 이것으로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모두 순종한 것으로 쳐주겠다, 하나님께 마음을 모두 드린 것으로 쳐주겠다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 사탄은 어떻게 했습니까.


창세기 3장 1절~5절
“1.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さて蛇は、神である主が造られた野の生き物のうちで、ほかのどれよりも賢かった。蛇は女に言った。「園の木のどれからも食べてはならないと、神は本当に言われたのですか。」
女は蛇に言った。「私たちは園の木の実を食べてもよいのです。
しかし、園の中央にある木の実については、『あなたがたは、それを食べてはならない。それに触れてもいけない。あなたがたが死ぬといけないからだ』と神は仰せられました。」
すると、蛇は女に言った。「あなたがたは決して死にません。
それを食べるそのとき、目が開かれて、あなたがたが神のようになって善悪を知る者となることを、神は知っているのです。」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죽으리라고 말씀하셨고, 마귀 사탄도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뭐라고 말했다고요?

창세기 3장 4절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すると、蛇は女に言った。「あなたがたは決して死にません。

여기서 마귀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부정합니다.

앞서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 드렸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뱀 곧 마귀 사탄이 하나님 말씀을 완전히 부정했다는 것은, 이는 하나님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입니다.


이제 하와는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것이냐,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할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비극은 벌어졌습니다.

창세기 3장 6절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そこで、女が見ると、その木は食べるのに良さそうで、目に慕わしく、またその木は賢くしてくれそうで好ましかった。それで、女はその実を取 って食べ、ともにいた夫にも与えたので、夫も食べた。

여자는 그러면 왜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는 열매를 따먹었습니까. 그것은 단순하게 말씀 드리자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을 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해도 하나님이 했던 말씀과 달리 죽지 않고, 그리고 자기들도 하나님과 같이 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인 에덴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기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 그들은, 결국 에덴에서 쫓겨났고,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가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받았던 축복을 모두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요?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4절~6절
“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あなたは自分のために偶像を造ってはならない。上の天にあるものでも、下の地にあるものでも、地の下の水の中にあるものでも、いかなる形をも造ってはならない。
それらを拝んではならない。それらに仕えてはならない。あなたの神、主であるわたしは、ねたみの神。わたしを憎む者には父の咎を子に報い、三代、四代にまで及ぼし、
わたしを愛し、わたしの命令を守る者には、恵みを千代にまで施すからである。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랑을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이는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너를 위하여 다른 우상을 만들지 말아라. 그것이 바로 나에 대한 사랑의 증거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우상을 만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도 자기가 만든 그 우상이 자기를 더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도 내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내가 만들어놓은 우상들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 시대에 못 배운 사람만이 우상을 섬기나요? 가진 것 없고 가난한 사람들만이 우상을 섬기나요? 아니요. 그렇지가 않아요.


오늘 말씀 중 로마서 1장 21절~23절을 봅니다.

로마서 1장 21절~23절
“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彼らは神を知っていながら、神を神としてあがめず、感謝もせず、かえってその思いはむなしくなり、その鈍い心は暗くなったのです。
彼らは、自分たちは知者であると主張しながら愚かになり、
朽ちない神の栄光を、朽ちる人間や、鳥、獣、這うものに似たかたちと替えてしまいました。

하나님을 모르는 것도 아니에요. 하나님을 알면서도, 지혜도 있고 배울 만큼 배우고 알만큼 아는 사람들, 세상적으로 가질 만큼 가진 사람들마저도 어리석게도 우상을 섬깁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요? 예,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우상에게 절하고 우상을 의지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 자기가 더 잘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5절
“25.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彼らは神の真理を偽りと取り替え、造り主の代わりに、造られた物を拝み、これに仕えました。造り主こそ、とこしえにほめたたえられる方です。アーメン。

바로 그렇게 믿기 때문에, 영원히 찬송 받으실 분은 오로지 주님이심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을 조물주 하나님보다 더욱 중요시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있어서 우상이 무엇입니까. 꼭 다른 종교에 있어서의 우상만이 우상인가요?

예를 들어서 대표적인 우상은 바로 돈, 재물입니다. 그리고 세상적 권력이나 지위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외모나 학벌이나 경력도 우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이와 같은 것들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것이 바로 선악과, 아담과 하와가 따먹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때로는 가족이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동안 살았던 하란 땅을 떠난 것이 75세였습니다. 그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로 말미암아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시겠다고 했습니다만, 정작 그에게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 하나를 달라고 소원했습니다만, 그 기도 응답을 받는 것이 그로부터 25년 뒤인 100세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아들 이름은 이삭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참으로 기뻤겠지요. 큰 민족이고 뭐고 간에 그의 나이 100세에 얻은 아들은 참으로 소중했을 것입니다. 이제 이 아들을 통해서 내 꿈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행복을 기대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명령을 하십니다.

창세기 22장 2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神は仰せられた。「あなたの子、あなたが愛しているひとり子イサクを連れて、モリヤの地に行きなさい。そして、わたしがあなたに告げる一つの山の上で、彼を全焼のささげ物として献げなさい。」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 소중한 아들, 이 세상에서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아들. 이제 그의 나이로 보았을 때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포기했었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 이삭. 그런데 이제 그 아이들 번제로 바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번제가 무엇입니까. 보통 양이나 염소를 죽이고는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어디 있습니까. 보통 사람 같았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도 남았겠지요. 어쩌면 이토록 잔인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는 명령에 대해서 단 한 마디 불평도 불만도 안 합니다.

아브라함은 결국 이삭을 사흘 걸려서 하나님이 알려주신 산에까지 데리고 가서는, 이제 아들을 결박한 다음에 죽이려고 했는데, 그 순간 하나님의 사자가 말합니다.


창세기 22장 12절
“12.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御使いは言われた。「その子に手を下してはならない。その子に何もしてはならない。今わたしは、あなたが神を恐れていることがよく分かった。あなたは、自分の子、自分のひとり子さえ惜しむことがなかった。」

이렇게 되니까 오히려 하나님께서 놀라십니다. 야, 아브라함아, 스톱. 그 아이한테 손 대지 마. 건드리지 마. 이처럼 다급하게 하나님께서는 만류를 하시지요. 그리고 이제 네가 그렇게 아끼는 아들마저도 네가 우상으로 여기고 있지 않구나. 전적으로 나만을 의지하고 있구나. 그래. 이제 내가 너에게 넘치도록 복을 줄게……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된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0장 37절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わたしよりも父や母を愛する者は、わたしにふさわしい者ではありません。わたしよりも息子や娘を愛する者は、わたしにふさわしい者ではありません。

물론 그렇다고 오해하실 분은 안 계시겠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자녀를 사랑해서도 안 되고 반드시 가족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오로지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지, 하나님보다도 다른 대상, 그것이 돈이나 세상적인 권력이나 지위나 하물며 자신의 가족이나 친족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보다 위에 두게 되면 그것이 또 하나의 우상이 되고 만다는 것, 그것이 자칫하면 하나님을 부인하게 되고 불순종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8절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あの空しいだましごとの哲学によって、だれかの捕らわれの身にならないように、注意しなさい。それは人間の言い伝えによるもの、この世のもろもろの霊によるものであり、キリストによ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여기서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철학>이라는 특정 학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지식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학문이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한다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유식한 것처럼, 아무리 고상한 것처럼 들린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것들은 한낱 초등학문에 불과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시편 111편 10절과 고린도전서 1장 18절을 보시겠습니다.

시편 111편 10절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知恵の初め それは主を恐れること。 これを行う人はみな賢明さを得る。 主の誉れは永遠に立つ。

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十字架のことばは、滅びる者たちには愚かであっても、救われる私たちには神の力です。

아멘.
우리 모두, 모든 우상을 물리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임을 깨닫고, 오직 우리의 구원이 되시는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심의 이음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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