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7회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2021년 1월 1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19절~20절 구약성경 1020페이지
“19.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イザヤ書 43章19節~20節
“19.見よ、わたしは新しいことを行う。今、それが芽生えている。あなたがたは、それを知らないのか。必ず、わたしは荒野に道を、荒れ地に川を設ける。
20.野の獣、ジャッカルや、だちょうも、わたしをあがめる。わたしが荒野に水を、荒れ地に川を流れさせ、わたしの民、わたしの選んだ者に飲ませるから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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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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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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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이제 2021년 새해를 맞이한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新しいことを行われる神様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실까요?


이사야 43장 19절~20절
19.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イザヤ 43章19節~20節
19.見よ、わたしは新しいことを行う。今、それが芽生えている。あなたがたは、それを知らないのか。必ず、わたしは荒野に道を、荒れ地に川を設ける。
20.野の獣、ジャッカルや、だちょうも、わたしをあがめる。わたしが荒野に水を、荒れ地に川を流れさせ、わたしの民、わたしの選んだ者に飲ませるからだ。

본문 말씀을 네 단계로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새 일을 행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길과 물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셋째로, 이로 인해서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하나님을 존경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마지막, 넷째로 광야와 사막에 낸 물과 강들의 물을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에게 마시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자,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새 일, 새로운 일을 행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새로운 일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전혀 볼 수 없었던 일,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 새로운 일은 무엇이냐 하면 광야에 길과 물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시겠다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생각해보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광야나 사막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땅입니까. 그렇습니다. 거기는 이미 죽은 땅입니다. 물론 광야나 사막에 실제로 가보면 거기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풀이 있는 곳도 있고, 파충류나 곤충 갈은 동물들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떻습니까. 거기는 도저히 사람이 살아갈만한 땅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농사를 짓든 가축들을 치든 간에 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식물을 심어서 키울 수 있을 만한 비옥한 토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땅이 넓다고는 하나 그 땅에 영양분이 충분치 않으면 나무를 심어도 자라나지 않습니다. 하물며 사막 같은 곳은 어떻습니까. 거기는 모두가 모래처럼 되어 있어서, 비가 내린다 하더라도 물이 고여있지 않고 모두 땅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는 이미 죽은 땅, 아무리 파충류나 벌레들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완전히 사망의 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만, 만약에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지요. 너도나도 짐을 싸서 거기를 떠나지요. 오히려 그런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거기를 버티고 있다는 것은 미련한 일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그곳이 그냥 내 마음대로 살게 된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땅, 약속의 땅이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도 조금 힘들어졌다고 거기를 내버리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으로 갈 것을 명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에 순종해서 길을 떠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살게 된다면 모든 일이 만사형통, 어떠한 근심도 걱정도 어려움도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바로 그 땅에 기근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라고 하는데, 수확이 넘쳐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축복이 넘쳐나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오히려 그 땅에 기근이 임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거기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기근이 발생하고 생활이 어려워집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번, 거기를 지켜야 했다.
2번, 거기를 떠나야 했다.


예, 믿음이 좋은 여러분께서는 분명히 <1번 거기를 지켜야 했다>를 선택하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냐 하면 창세기 12장 10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창세기 12장 10절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その地に飢饉が起こったので、アブラムは、エジプトにしばらく滞在するために下って行った。その地の飢饉が激しかったからである。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브라함은 그 땅을 지켰어야 했습니다. 아니, 그렇잖아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인데, 축복의 땅인데 조금 어려워졌다고 그 땅을 헌신짝 내버리듯이 버려버리고 애굽으로 가요?

뭐, 이렇게 말하기는 쉽겠습니다만,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거 좀 남의 얘기라고 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것 아니십니까. 아브라함이 우리보다도 믿음이 적은 사람이에요?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 믿고 자신이 그 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나안 땅으로 왔을 정도로 놀라운 믿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근이 임했을 때 가나안 땅을 버리고, 당시 세상적으로 보면 비옥했던 애굽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하며, 당시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가나안 땅에 임했던 기근은 상당히 심각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좋고 축복도 좋지만, 당장 먹고 살 것이 없어지고 힘들어지는데 하나님이나 축복이 무슨 소용이냐, 우선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아브라함이 이렇게 생각했는지, 아니면 그의 아내 사라가 이렇게 닦달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만, 결국 그는 가나안을 버리고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어떤 일을 당하게 됩니까. 그곳 애굽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를 애굽의 왕에게 빼앗기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아내를 빼앗긴다는 것이 아니라, 당시 자녀가 없었던 그들에게 있어서는 가정이 완전히 파괴되는, 그와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그들은, 이제 회개하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룻기에 보면 또 어떻습니까. 룻기 1장 첫 부분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룻기 1장 1절~5절
“1.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さばきつかさが治めていたころ、この地に飢饉が起こった。そのため、ユダのベツレヘム出身のある人が妻と二人の息子を連 れてモアブの野へ行き、そこに滞在することにした。
その人の名はエリメレク、妻の名はナオミ、二人の息子の名はマフロンとキルヨンで、ユダのベツレヘム出身のエフラテ人であった。彼らはモアブの野へ行き、そこにとどまった。
するとナオミの夫エリメレクは死に、彼女と二人の息子が後に残された。
二人の息子はモアブの女を妻に迎えた。一人の名はオルパで、もう一人の名はルツであった。彼らは約十年の間そこに住んだ。
するとマフロンとキルヨンの二人もまた死に、ナオミは二人の息子と夫に先立たれて、後に残された。


이스라엘 민족이 약 400년에 걸친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을 마치고 광야로 나와서 40년을 지낸 다음에, 이제 여호수아의 지휘 하에 가나안 땅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각 열두 지파 별로 나누게 되는데, 그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땅이었기 때문에, 서로 매매할 수도 없고, 빌려주거나 하더라도 나중에는 반드시 되돌려주어야 하는 땅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여기에 등장하는 엘리멜렉도 알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1절에 의하면 흉년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대단히 먹고 살기 힘든 상황까지 되지 않았나 합니다. 당시 모압 지방이라고 하는 곳은 분명히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살고 있던 땅은 흉년이 들고 형편없게 되었는데, 그보다는 차라리 좀 더 살이 편한 곳으로 여겨졌겠지요. 그래서 그는 큰 결정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버리고 자신과 자신의 아내 나오미, 그리고 두 아들을 이끌고 모압 지방으로 이주를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있더니 엘리멜렉이 죽어버립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엘리멜렉의 아내인 나오미와 두 아들 뿐입니다. 세월이 지나서 두 아들은 그 지역 이방인의 땅에서 이방인 여인 아내를 맞이합니다. 그래서 이제 가족은 나오미와 두 아들, 그리고 두 며느리. 이렇게 5인 가족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나오미에게 있어서는 남편 엘리멜렉은 먼저 세상을 떴지만 그래도 두 아들이 있었기에 든든했겠지요. 아버지가 없었음에도 무사히 성장해서 며느리까지 얻었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스러웠겠습니까.

하지만 재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있어서 소망이라고 할 수 있었던 두 아들마저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제 남은 가족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둘입니다. 여자 셋이, 그것도 이방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었겠지요. 나오미는 결국 자신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결정을 합니다.

이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알았던 고향 사람들은 모압 땅으로 이주를 가려는 그 가족들을 만류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힘들더라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 조금만 참아보자, 조금만 견뎌보자. 그러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거야. 이렇게 그들을 설득했지만 그들은 이를 뿌리치고 모압 땅으로 가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습니까. 그렇습니다. 나오미에게서 본다면 자신의 남편도 죽고 자신의 두 아들마저도 죽었습니다. 그야말로 가정이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나오미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얻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부동산은 중요하다? 언젠가는 오르기 때문에 팔면 안 된다?

아니 무슨 성경이 부동산 투자 같은 것을 가르쳐주기 위한 책인가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친다 하더라도 믿음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만사형통이래요?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인생에 어려움이 전혀 없대요? 그런 말이 성경에 어디 적혀 있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어려움들이 다가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기서 끝인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과 시련과 시험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의 핵심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순종하는 삶을 산다고 하면서 열심히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왔는데, 믿음을 버리고 세상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보다도 더 잘 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만 손해 보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같아요. 나만 힘들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것만 같아요. 도무지 고통과 고난이 끊이질 않아요……. 이런 생각이 드실 때가 있으십니까. 예, 있으시겠지요. 그 마음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아니, 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님께서 왜 그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그럴 때 우리의 구주 되신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실까요.

마가복음 5장 36절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イエスはその話をそばで聞き、会堂司に言われた。「恐れないで、ただ信じていなさい。」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 의심이 다가왔을 때,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 다가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라고 말씀하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처럼 담대하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고, 광야에 물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려면,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면, 주변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격려해주나요? 긍정적인 말을 해주나요? 아니요. 오히려 부정적인 말들을 합니다.

자기가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안 된다, 못 한다. 그런 걸 해서 뭘 하냐. 이런 말을 하면서 힘을 뺍니다. 조금 일이 잘 안 되는 것을 보면, 거봐라. 내가 뭐랬냐. 안 된다고 하지 않았냐. 뭐 이러면서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느헤미야 4장에 의하면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려는 그들에게 이방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ネヘミヤ記

느헤미야 4장 3절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彼のそばには、アンモン人トビヤがいて、彼も「彼らが築き直している城壁など、狐が一匹上っただけで、その石垣を崩してしまうだろう」と言った。

야, 너희들이 돌 성벽을 쌓아? 아이고, 그런 성벽 같은 것은 여우 한 마리가 올라가도 무너질 거야.

아니, 누가 자기들한테 물어봤어요? 당신들이 보기에 이 성벽이 어느 정도 튼튼하게 보이는지 물어봤냐 하는 거예요. 아니에요. 안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을 보면서 업신여기고 마음에 상처를 주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광야와 사막이라고 하는 완전히 죽은 땅에 길을 내시고 강을 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되면 광야와 사막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죽은 땅에서 이제 살아있는 땅, 비옥한 땅으로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20절에 보면 이 모습을 보고 들짐승들마저도 하나님을 존경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 때까지는 정말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고 구원도 모르는 이방인들마저도 그 모습을 보면 너무도 놀라워서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역사를 무엇 때문에 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까.

오늘 본문 20절 후반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わたしが荒野に水を、荒れ地に川を流れさせ、わたしの民、わたしの選んだ者に飲ませるからだ。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그냥 평범한 곳에 작은 개울을 파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공사입니다. 돈도 한 두 푼 드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하물며 길을 내고 강을 내요. 그것도 어디에 내냐 하면 광야나 사막에 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의 기술로 한다 하더라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놀라운 일을 무엇을 위해 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기 위해서 이처럼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2020년 한 해를 뒤돌아보면 우리 인생에서 본다면 정말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바이러스라고 하는 대재앙의 해였습니다. 그리고 이 끔찍한 대재앙은 2021년 1월 1일 현재에도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사상초유(前代未聞)의 고통과 고난, 이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하는 대재앙은, 이를 뒤집어 본다면, 이는 사상초유의 새로운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시려는 징조요, 사상초유의 놀라운 축복을 부어주시려는 징조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모든 것이 완전히 광야나 사막처럼 되어버렸습니까. 사방을 돌아보아도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 고통을 누구보다도 우리 주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통 중에 버리실 것이었다면, 2천년 전에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게도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4장 13절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しかし、最後まで耐え忍ぶ人は救われます。

우리 모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그리고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견디는 자가 되어서, 마침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주신 사상초유의 놀라운 축복을 받으시는 2021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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