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9회 은혜와 감사
2021년 3월 21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4장 4절~8절
“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4章 4節~8節
“4.働く者にとっては、報酬は恵みによるものではなく、当然支払われるべきものと見なされます。
5.しかし、働きがない人であっても、不敬虔な者を義と認める方を信じる人には、その信仰が義と認められます。
6.同じようにダビデも、行いと関わりなく、神が義とお認めになる人の幸いを、このように言っています。
7.「幸いなことよ、不法を赦され、罪をおおわれた人たち。
8.幸いなことよ、主が罪をお認めにならない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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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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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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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27번째 시간으로서 “은혜와 감사” 恵みと感謝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인 다섯 구절 중에서 앞의 두 구절, 그리고 뒤의 세 구절로 나누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성결 말씀도 그렇습니다만, 이 말씀도 깊은 생각 없이 읽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만, 자세히 읽어보면 상당히 독특한 내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앞의 두 구절부터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4장 4절~5절
“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ローマ人への手紙 4章 4節~8節
“4.働く者にとっては、報酬は恵みによるものではなく、当然支払われるべきものと見なされます。
5.しかし、働きがない人であっても、不敬虔な者を義と認める方を信じる人には、その信仰が義と認められます。

먼저 이 말씀에는 <삯>과 <보수>와 <은혜>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특별히 <보수>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개역한글에서는 <빚>이라는 말씀으로 쓰였습니다만, 개역개정에서는 <보수>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4절을 조금 알기 쉬운 말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이렇게 바꾸어 보면 어떨까요.

“일하는 사람에게는 받는 돈이 은혜로 여겨지지 않고 보수로 여겨진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무슨 일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월급에 합당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300만원어치 일을 했어요. 그리고 그 보수로 300만원 받았어요. 이렇게 되면 이는 은혜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당연한 받아야 할 돈, 대가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은혜>에는 있고 <대가>에는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감사>입니다.

반면에, 내가 일한 것도 없는데, 다시 말해서 내가 300만원어치도 일을 한 것이 없는데 300만원이나 받았다고 한다면 이는 <은혜>가 되지요. 대가에 걸맞는 일도 안했는데 그 돈을 받았다고 한다면 내가 일한 것에 비해 훨씬 많은 돈을 받았다는 것이잖아요. 그렇게 되면 당연히 <감사한 마음>이 들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300만원어치 일을 해서 300만원이라는 대가를 받았다고 한다면 이는 감사한 마음이 들 필요는 없겠지요. 상대방은 나에게 지불해야 할 돈을 지불한 것이고, 나는 받아야 할 돈을 받았을 뿐입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감사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 합니다.

어느 회사에 A와 B라고 하는 두 직원이 있었습니다. A는 매달 300만원어치 일을 하고 300만원을 받았습니다. B는 매달 월급에 걸맞는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300만원을 받았습니다.

회사에서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A는 언제나 당당했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성과를 올렸고, 그 성과에 걸맞는 월급을 받는다. 나는 회사에 있어서 유익한 존재다. 오히려 회사에서는 이와 같은 내 월급을 올려주어야 하고 승진을 시켜주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상사를 대할 때에도 당당했습니다. 하물며 사장님을 대할 때에도, 겉으로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내가 당신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고마워해야 한다……이런 생각까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B는 맨날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일을 잘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동료 직원 A를 보면 그는 계약도 잘 따오고 고객관리도 얼마나 잘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B는 상사를 대하면 일을 못해서 혼나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장님을 만나면, 맨날 일도 제대로 못하는데 월급만 꼬박꼬박 받아가는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도 있고, 그리고 자기에게 있어서는 과분한 월급을 주는 덕분에 우리 가족이 생활할 수 있게 해주니 얼마나 감사한가 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장님이 두 사람을 부릅니다. 회사 결정으로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은 승진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저기 지방 시골로 좌천을 하게 생겼습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두 사람은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이 두 사람은 알고 있었습니다. A는 자기야 말로 승진할 사람이요, B는 자기야 말로 좌천될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한테서 나온 말씀은 의외였습니다. 시골로 좌천당할 사람은 A였고 오히려 승진 대상자가 B였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화가 난 사람은 당연히 A였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지금까지 월급 300만원을 받았지만, 제가 300만원어치 일을 안 했습니까? 오히려 400만원어치 500만원어치 일을 했습니다. 반면에 B는 어떻습니까. 300만원어치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B를 승진 시키고 나처럼 유능한 직원을 좌천 시킨다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랬더니 사장님이 뭐라고 하셨겠습니까. 이봐. 회사에서 자네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고작 월급 300만원이라고 생각하나? 자네가 회사에서 사용하는 책상, 의자, 컴퓨터는 공짜야? 그리고 식사비에 교통비, 사무실 냉난방비와 관리비에 기타 세금도 있고, 매년 직원 연수도 해서 교육도 시켜주잖아. 얼마 전에는 해외연수도 다녀왔지? 그리고 자네들이 사는 주택보조금도 나가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자녀교육비도 지원해주고 있어.

어디 그 뿐인가? 우리 회사가 있는 여기 부동산 값이 얼마나 비싼 곳인지 잘 알잖아? 그렇다면 자네들이 사용하고 있는 땅값도 계산에 넣어야지.


지금까지 자네들에게 들어간 돈에 비하면 자네들이 한 달에 100만원을 벌었건 500만원을 벌었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그런데 얼마 전에 임원회의를 열어서 승진시킬 사람과 지방 시골로 보낼 사람을 결정하게 되었는데 자네 A는 시골로 보내고 B는 승진시키기로 결정 됐어.

이 사장님의 말씀,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되십니까. 좀 억지스럽다고 생각되십니까.

그 사람에게 들어간 돈이 아무리 많고, 거기에 비해서 그 사람들이 벌어온 돈이 아무리 적다고 해도 그렇지. 그래도 조금이라도 일을 잘 한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혹시 그렇게 생각 되십니까.

지금도 바깥에 나가서 회사원들에게 질문을 한 번 해 보세요. 당신은 회사에서 받는 월급이 자기가 일한만큼 받는다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못 받는다고 생각할까요.

작년 8월에 어느 한국 일간지에 실린 설문조사에 의하면 직장인 107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았더니 약 70%가 연봉에 불만족스럽다고 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불만 왜 나오는 것일까요. 물론 그 회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한국이나 일본을 보았을 때 설마 70%나 그런 문제가 있는 회사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불만이 나오는 이유, 간단합니다. 내가 일한만큼 월급을 못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불만이 생기는 것이겠지요.


여러분 중에서는 직장엔 근무하고 계시거나, 아니면 근무해 보신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그렇다면 내가 받는 월급은 내가 일만만큼의 월급을 받고 있거나,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한 직원을 고용한다고 하면 거기에 들어가는 인건비는 월급만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그 직원 한 사람이 근무하는 데에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감안한다면 일반적으로 그 사람에게 지급하는 월급의 3배가 인건비로 들어간다는 것은 회계상에 있어서 이미 상식입니다.

이렇게 계산을 해본다면 300만원 받는 직원은 적어도 한 달에 900만원어치의 이익을 회사에 가져다 주어야지만 ±0라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앞서 연봉에 불만족스럽다고 답을 했던 70% 분들은 자기 회사에 자신의 월급의 3배에 달하는 이익을 매달 가져다주었을까요? 글쎄요. 저는 여기에 적지 않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반면에 내가 받는 월급만큼 일을 하지 못했는데도 월급을 받아요. 이는 당연히 받아 마땅한 보수가 아니라, 자신에게는 과분한 은혜로 생각해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믿음 안에서는 어떨까요.


오늘 본문 중에서 로마서 4장 5절을 보십시오.

로마서 4장 5절
“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ローマ人への手紙 4章 5節
“しかし、働きがない人であっても、不敬虔な者を義と認める方を信じる人には、その信仰が義と認められます。

이 말씀을 바꾸어 본다면 어떻게 됩니까. 일을 못했다, 돈을 많이 벌어오지 못했다 하더라도, 일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고 기록합니다.

그래요. 물론 회사에서는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주는 직원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직원에게는 특별 보너스나 특별 승진 같은 것이 주어질 수가 있겠지요. 하지만 믿음 안에서는 그와 같은 일을 불가능합니다. 그건 왜 그럴까요?

자, 우리는 장차 이 세상에서 주님이 허락하신 생을 마감하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어떤 외국에 들어갈 때를 보면 <비자>라고 하는 것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쉽게 말해서 자기 나라에 들어와도 된다는 <입국허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허가는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의롭다는 인정을 받습니까.

로마서 3장 20절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なぜなら、人はだれも、律法を行うことによっては神の前に義と認められないからです。律法を通して生じるのは罪の意識です。

우리가 우리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었다면, 우리는 당당할 수가 있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우리가 믿음 안에서 의롭다고 여겨질 만한 믿음의 행위를 한 결과 의롭게 되었다면, 우리는 당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누구도 의롭다고 할만한 믿음의 행위를 한 사람이 없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전도도 많이 하고, 헌금도 많이 내고 해 봤자 그와 같은 행위 만으로는 의롭다는 말을 듣지 못한 대요. 이는 마치 회사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 봤자, 나한테 들어가는 인건비보다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까.


로마서 3장 23절~24절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3.すべての人は罪を犯して、神の栄光を受けることができず、
24.神の恵みにより、キリスト・イエスによる贖いを通して、価なしに義と認められるからです。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생명, 예수님의 보혈만큼의 가치가 필요합니다.

자, 좋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예수님의 생명에 해당하는 일을 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보혈의 값어치만큼 일을 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이 가능합니까. 아니요.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역사상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지배자라 하더라도, 아무리 역사상 많은 돈을 벌었던 재벌이라 하더라도 이 지구 전체를 지배하거나 소유했던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명, 예수님의 보혈이 고작 이 작은 지구 하나 정도밖에 가치가 없나요?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것, 이 우주 모든 것을 모두 합한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피 한 방울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차피 내가 내 능력으로 갚을 수가 없어요. 내 죄를 해결할 수가 없어요. 나는 참으로 죄도 많고 부족한 것도 많아요. 내 능력으로는 하나님 나라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 대신 채찍에 맞아주시고, 나 대신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주시고, 나 대신 죽어주심으로 인해서, 내 죄가 모두 해결되었다고 하는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어떻게 하기만 하면요?

그렇습니다. 믿기만 하면 그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여겨 주신다. 즉, 그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시 화제를 좀 바꾸어 볼까요?

한국은 면허 기간이 10년인데 여기 일본은 참 기간이 짧아요. 보통 일반적으로 유효기간이 3년입니다.

그런데 5년 동안 교통위반을 하지 않으면 면허가 금색 띠가 있는 골드면허를 받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면허 갱신료나 보험료가 할인되고 갱신할 때 받는 교육시간도 단축되고, 반면에 유효기간은 3년에서 5년으로 연장이 되는 등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가 있게 되거든요.


제가 얼마 전에 운전면허를 갱신했습니다. 제가 초중고등학교 때 일본에 있을 때에는 당연히 면허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 면허를 처음 딴 것은 다시 일본에 와서 살기 시작한 지난 2015년이었습니다. 3년 뒤인 2018년에 갱신을 하고, 또 3년 뒤인 올해 2021년에 갱신을 하게 된 것인데, 이제 그 이전 5년 동안 무사고 무위반이었기 때문에 이번에 무사히 골드면허로 갱신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살 때에는 전혀 운전도 안 하다가 여기 군마에서 살게 되니까 거의 매일 같이 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또 여기저기 장거리도 가는 일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골드면허를 따게 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만약에 제가 5년 동안 정말로 사고는 물론이고 경찰이나 카메라가 보고 있거나 안 보고 있거나 교통위반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면, 이는 제가 당연히 받아야 할 보수라고 생각하겠지요. 물론 거기서 주는 면허를 받을 때에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만, 진심으로 아, 정말 감사하다는 마음은 안 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당연한 걸 받았을 뿐인데 감사할 게 뭐가 있어요?

하지만, 그 5년 동안에 사고까지는 아니지만 교통위반을 한 적이 있었다면 어떨까요. 위반이라면 여러 가지 있겠지요. 속도위반, 일시정지 위반, 주차위반, 신호위반 등 여러 가지 위반 종류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이와 같은 위반을 한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골드면허를 받았다면 어떻습니까. 이렇게 되면 당연히 받아야 할 보수가 아니라, 은혜가 되겠지요. 골드면허를 받아야 할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로 생각되겠습니까.

자, 그럼 여기서 한 가지 퀴즈입니다. 저는 이 골드면허를 받았을 때, 보수로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은혜로 생각했을까요.

예, 얼마나 크나큰 은혜로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실제로 면허시험장에서 면허를 받았을 때 보면, 그냥 <감사합니다>라고만 했습니다만, 마음 같아서는 그 면허를 주시는 분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아, 정말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라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가슴에 손을 놓고, 지난 5년 동안 그런 위반을 한번도 한 적이 없어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골드면허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면허를 받을 자격은 없지만, 그 위반하는 순간, 경찰에게 들키거나, 카메라에 찍히지 않았기 때문에 받을 수 있었던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냐. 그렇습니다. 감사와 은혜가 넘치는 것이지요.

우리가 경찰이나 단속카메라 눈을 피할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욥기 34장 21절~22절
“21.그는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22.행악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사망의 그늘이 없느니라”

神の御目が人の道の上にあり、その歩みのすべてを神が見ておられるからだ。
不法を行う者どもが身を隠せる闇はなく、暗黒もない。


요한1서 3장 20절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たとえ自分の心が責めたとしても、安らかでいられます。神は私たちの心よりも大きな方であり、すべてをご存じだからです。

하나님 앞에서는 그 무엇 하나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감출 수도 없고 숨길 수도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오늘 본문 중에서 6절~8절까지를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4장 6절~8절
“6.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4章 6節~8節
“6.同じようにダビデも、行いと関わりなく、神が義とお認めになる人の幸いを、このように言っています。
7.「幸いなことよ、不法を赦され、罪をおおわれた人たち。
8.幸いなことよ、主が罪をお認めにならない人。」”


그렇습니다. 우리의 불법이 사함을 받습니다 죄가 가려집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이처럼 큰 복이 어디 있습니까.

이를 위해 우리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다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다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인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셨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감사를 잃어버리면 그 틈을 타고 나오는 것이 불평이고 불만입니다. 불평과 불만이 왜 나오겠습니까. 감사가 사라지기 때문에 나옵니다.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게 당연히 주어져야 할 것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평이 나오고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구원을 받을 자격도 없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오로지 예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스스로를 의롭게 하기 위해서 고생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것 뿐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구약에서는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윗 왕을 위해서도 주시지 않았던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만 믿으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는 값없이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천국 백성이 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이제 우리 마음 안에 있던 불평과 불만을 던져버리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를 위해,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감당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천국 백성으로서 우리 남은 인생 동안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고, 이 귀한 복음을 우리 이웃에게 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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