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1회 새롭게 되는 행실
2021년 4월 4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エペソ人への手紙 4章 22節~24節
“22.その教えとは、あなたがたの以前の生活について言えば、人を欺く情欲によって腐敗していく古い人を、あなたがたが脱ぎ捨てること、
23.また、あなたがたが霊と心において新しくされ続け、
24.真理に基づく義と聖をもって、神にかたどり造られた新しい人を着ること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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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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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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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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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부활절을 맞이해서 여러분과 함께 “새롭게 되는 행실” 新しくなる行い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이 땅으로 오셨습니다. 그 최대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예,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만 해서는 아무 것도 해결이 안 됩니다.

요한1서 2장 2절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この方こそ、私たちの罪のための、いや、私たちの罪だけでなく、世全体の罪のための宥(なだ)めのささげ物です。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는 너무나도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졌다는 것은 구원과도 멀어졌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대로라면 선택의 여지 없이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화목제물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이는 구약에서 보면 모든 제물은 하나님의 제단 앞에서 죽어야만 했습니다. 살아서 펄떡펄떡 뛰는 짐승들을 하나님 앞에 그대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제단 앞에서 그 몸을 찢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바쳐졌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채찍에 맞으시고 피범벅이 되신 채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을, 우리가 받아야 마땅한 죽음의 형벌을 대신해서 받아주신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받으셨다면, 이로 인해서 하나님이 용서를 해 주셔야만 합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아야할 형벌을 대신 받아 주셨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받지 못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화목 제물로 세우신 예수님을 기뻐 받아 주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아주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모두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부활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모두 용서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서, 우리가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모두 받아 주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 받고, 구원 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 천국 백성으로 인정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오셨던 최대의 이유는, 바로 이 부활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도 장차 때가 이르게 되면 부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부활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3절~15절
“13.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海はその中にいる死者を出した。死とよみも、その中にいる死者を出した。彼らはそれぞれ自分の行いに応じてさばかれた。
それから、死とよみは火の池に投げ込まれた。これが、すなわち火の池が、第二の死である。
いのちの書に記されていない者はみな、火の池に投げ込まれた。

가끔 보면 우리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아는 분들이 계십니다. 구원을 못 받을 바에야 죽고 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거나 하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기록은 성경 어디에도 없으며, 오히려 사망 뒤에 있을 심판에 대해서 성경은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백성이든 아니든 부활은 합니다. 그러나 선택 받은 백성,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이 아니라면,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죄로 인하여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는 불못에 던져지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는 사람들의 부활은 어떨까요.

요한계시록 19장 8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8절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花嫁は、輝くきよい亜麻布(あまぬの)をまとうことが許された。その亜麻布とは、聖徒たちの正しい行いである。」

예수님의 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된다고 하는데,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상징한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기록된 <옳은 행실>이란 무엇일까요. 이는 부활의 근본 의미를 생각해보면 답을 알 수가 있습니다.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오래된 것을 버리고 새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새로워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옳은 행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ですから、だれでもキリストのうちにあるなら、その人は新しく造られた者です。古いものは過ぎ去って、見よ、すべてが新しくなりました。

우리는 새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새 것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 하면, 이는 이전 것을 보내야 합니다. 이전 것이 지나가지 않고서는, 이전 것을 보내 버리지 않고서는 새 것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전 것을 고집합니다. 이전 것을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아무리 몇 년 몇 십년 교회에 다녀 봤자 무슨 소용입니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새로워질 수 있는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몸의 여러 부분으로 많은 것들을 받아들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맛을 보고, 피부로 만져서 느끼기도 합니다. 이를 5감이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가장 변화를 꺼려하는 감각은 어느 감각일까요.

어느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향기, 새로운 맛, 새로운 촉감 같은 것은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선호한다고 합니다만, 이 듣는 것은 가장 변화를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음악이나 노래 같은 것을 보면, 흘러간 노래, 7080 등등 귀로 듣는 것들은 새것보다 옛 것을 더 선호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를 성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반복적으로 <들었으나>라고 하는 말씀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21절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昔の人々に対して、『殺してはならない。人を殺す者はさばきを受け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われていたのを、あなたがたは聞いています。

마태복음 5장 27절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姦淫してはならない』と言われていたのを、あなたがたは聞いています。

마태복음 5장 33절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また、昔の人々に対して、『偽って誓ってはならない。あなたが誓ったことを主に果たせ』と言われていたのを、あなたがたは聞いています。

마태복음 5장 38절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目には目を、歯には歯を』と言われていたのを、あなたがたは聞いています。

마태복음 5장 43절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あなたの隣人を愛し、あなたの敵を憎め』と言われていたのを、あなたがたは聞いています。

여기서는 반복적으로 <들었으나>라고 말씀하시면서, 지금까지 그들이 들어왔던 것, 지금까지 그들이 옳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지적하십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단이다, 율법을 부정한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18절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わたしが律法や預言者を廃棄するために来た、と思ってはなりません。廃棄するためではなく成就するために来たのです。
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天地が消え去るまで、律法の一点一画も決して消え去ることはありません。すべてが実現します。

예수님께서 이처럼 그들이 지금까지 들어왔던 것을 지적하신 것은 율법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들어왔던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그들이 지금까지 들어왔던 것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고집함으로 인해서, 얼마나 새 것을 얻지 못 하였는지를 말씀하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기존에 다른 감각으로 인식해온 것에 대해서도 새로운 근거를 제시하면 의외로 쉽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귀로 들어온 것을 바꾼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교회에서 보면 믿음의 척도, 그 사람이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에 대한 하나의 척도가 뭐냐 하면 그 중 하나가 새벽기도나 철야예배, 특히 그 중에서도 새벽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다니느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누구는 지금까지 새벽기도를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어느 교회는 새벽기도로 부흥했다. 새벽기도를 가야지만 축복을 받는다. 등등. 이런 이야기를 여러분들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새벽기도가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기다렸다는 듯이 말씀하십니다.

시편 57편 8절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私のたましいよ 目を覚ませ。 琴よ 竪琴よ 目を覚ませ。 私は暁を呼び覚まそう。


시편 108편 2절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琴よ 竪琴よ 目を覚ませ。 私は暁を呼び覚まそう。

마가복음 1장 35절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さて、イエスは朝早く、まだ暗いうちに起きて寂しいところに出かけて行き、そこで祈っておられた。


누가복음 6장 12절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そのころ、イエスは祈るために山に行き、神に祈りながら夜を明かされた。

자, 봐라. 시편에서도 새벽을 깨운다고 하지 않느냐. 예수님도 밤이 새도록 기도하시고 새벽에도 기도하셨다고 되어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우리도 기도로 새벽을 깨워야 한다. 예수님처럼 밤새도록 철야 기도하고 새벽에도 기도를 하면 축복을 받는다.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 말씀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솔직히 교회에 오래 다니신 분들이라면 이 말씀을 틀렸다고 당당하게 말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왜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이게 맞는지 틀린 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6절~7절
“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あなたが祈るときは、家の奥の自分の部屋に入りなさい。そして戸を閉めて、隠れたところにおられるあなたの父に祈りなさい。そうすれば、隠れたところで見ておられるあなたの父が、あなたに報いてくださいます。
また、祈るとき、異邦人のように、同じことばをただ繰り返してはいけません。彼らは、ことば数が多いことで聞かれると思っているのです。

그렇다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기도를 해야 하나님께서 더 잘 들어주신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적어도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는 그와 같이 말씀하셨다는 기록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밤새도록 기도하셨다면서? 새벽에 기도하셨다면서? 예, 그렇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 점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わたしの戒めを保ち、それを守る人は、わたしを愛している人です。わたしを愛している人はわたしの父に愛され、わたしもその人を愛し、わたし自身をその人に現します。」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라야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는다고 하셨지, 예수님을 따라하는 자, 예수님 흉내를 내라고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오셨을 때, 그 때 3년 정도에 걸친 공생애 기간 동안에 다니셨던 길을 그대로 3년동안 걸어서 다니기만 했다면, 그것으로 예수님께서 기뻐하는 삶이라고 여겨 주시겠습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록 이스라엘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곳에 살면서, 성경을 통하여 말씀해주신 하나님 말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예수님 마음을 가지고 우리 이웃에게 작은 선을 베풀었다면 그것이야말로 예수님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는 일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따라하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내가 매일 아침 새벽기도를 드리면서,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내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이 질문 역시 교회에 오래 다니신 분들이라면 이 말씀을 틀렸다고 당당하게 말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유도 마찬가지에요. 실제로 그렇게 오랫동안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자, 여러분. 매일 새벽 5시에 새벽을 깨우겠다면서 큰 소리로 찬양을 드리고 통성 기도도 하고 그런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건 새벽을 깨우는 게 아니라 옆집 이웃사람을 깨우는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깨운다고 새벽이 오고, 안 깨운다고 새벽이 안 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안 깨운다 하더라도 새벽은 오고 아침도 오고 태양도 뜹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깨워야 할 새벽이 없습니까. 아니요. 있습니다. 우리가 깨워야 할 새벽은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고, 복음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 바로 그것을 깨워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끝내는 구원을 못 받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십자가를 전하고 복음의 빛을 전함으로써, 캄캄한 깊은 어두움으로 가득 찼던 사람들의 마음에 새벽이 임하고, 그리고 절망과 좌절로 어두워졌던 이 세상에 새벽이 임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새벽을 깨우는 일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복음으로 어두워진 세상을 깨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요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세상을 깨우고 있습니까. 아니요. 오히려 세상 어둠 속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세상인데, 예수 믿는 사람들로 인하여 오히려 더 어두워지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아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얼마 전 페이스북을 보니까 어떤 목사님께서 전도를 하시는데 그렇게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다고 합니다. 이분 말씀에 의하면 여러 명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모두가 교회에 대한 반감이 지나쳐서 거의 증오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마귀 사탄이 전도를 방해 해서요? 예,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 스스로의 모습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모습이 진정 성경적이었는지, 진정 새로워지고 있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새로워져야 하겠습니까.


로마서 10장 17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ですから、信仰は聞くことから始まります。聞くことは、キリストについてのことばを通して実現するのです。

우리는 가장 변화를 거부하는 이 귀부터 먼저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귀를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 바로 성경 말씀으로 우리의 귀를,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その教えとは、あなたがたの以前の生活について言えば、人を欺く情欲によって腐敗していく古い人を、あなたがたが脱ぎ捨てること、
また、あなたがたが霊と心において新しくされ続け、
真理に基づく義と聖をもって、神にかたどり造られた新しい人を着ることでした。


우리가 우리 몸을 씻지 않고 내버려두면 더러워지듯이, 우리 마음도 씻지 않고 내버려두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유혹으로 더러워지고 욕심으로 더러워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음으로 깨끗해져여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부활절을 맞이해서 우리는 옳은 행실, 새롭게 되는 행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말씀, 하나님 말씀으로, 성경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서, 어두움을 물리치고 이 세상에서 진정한 새벽을 깨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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