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0회 살아나는 영혼
2022년 5월 15 설교 - 로마서 강해 83

홍성필 목사
www.kirin.kr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9장 25절~26절
"25.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9章25節~26節
“25.それは、ホセアの書でも神が言っておられるとおりです。「わたしは、わたしの民でない者をわたしの民と呼び、愛されない者を愛される者と呼ぶ。
26.あなたがたはわたしの民ではない、と言われたその場所で、彼らは生ける神の子らと呼ば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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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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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83번째 시간으로서 “살아나는 영혼” よみがえるたましい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이 본문은 사도 바울이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구약에 있는 호세아서를 인용한 말씀입니다.

호세아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호세아 2장 23절
“23.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わたしは、わたしのために地に彼女を蒔き、あわれまれない者をあわれむ。わたしは、わたしの民ではない者に『あなたはわたしの民』と言い、彼は『あなたは私の神』と応える。」


호세아 1장 10절 후반부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の民ではない」と言われたその場所で、彼らは「生ける神の子ら」と言われる。

사실 이 본문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이스라엘 자손들, 수많은 백성 중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 주시고,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인도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뻑 하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을 만들어서 그것들을 의지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하여 경고도 하고 그리고 징계로 말미암아 그들을 다스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스라엘 자손들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그들을 심판하신다 하더라도 영원히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범죄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이 바로 이 호세아서 말씀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오늘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를 단순히 이스라엘 자손들, 유대인에 대한 구원의 회복이 아니라 이방인에 대한 복음 전파로 해석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선 이 부분부터 살펴볼까 합니다. 지금 말씀 드린 것처럼 본래 호세아서의 본문은 범죄한 이스라엘 자손의 구원에 대한 내용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이 구절을 오해해서 잘못 해석한 것일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면 또 모를까 특히나 사도 바울에 있어서는 그럴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도행전 2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본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도행전 22장 3절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私は、キリキアのタルソで生まれたユダヤ人ですが、この町で育てられ、ガマリエルのもとで先祖の律法について厳しく教育を受け、今日の皆さんと同じように、神に対して熱心な者でした。

이 말씀에 의하면 바울은 가말리엘이라는 선생님 밑에서 조상들의 율법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는데, 역시 사도행전 5장 34절에 의하면 가말리엘은 당시 모든 백성에게 존경 받는 율법교사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상들의 율법이 무엇입니까. 이는 쉽게 말해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 모세오경을 비롯해서 구약 전반에 걸친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은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가 중요하다고 한다면 당시는 누구한테 배웠느냐 하는 것이 중요했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모든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선생님 밑에서 구약 전반을 배웠다는 것은, 이는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최고 명문대에서 율법을 철저하게 배웠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바울은 학업을 마치고 고등관리로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학교만이 아니라 관료로 임용되어서 말하자면 출세 코스를 달리고 있는 청년 엘리트였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에 있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던 바울이 성경해석을 오해했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그는 본래 범죄한 이스라엘 자손에 대한 성경구절을 이방인에 대한 구원으로 해석을 했을까요.

한 예로 유명한 구절인 요한3서 2절을 말씀 드립니다.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 성경 중에서 요한3서는, 한국어 성경 중에서는 요한 2서에 이어서 두 번째로 짧지만, 원어로 보면 제일 짧은 책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조심해야 하는 것은, 길이로 인해서 성경의 중요성이 정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긴 성경은 시편, 이사야, 예레미야, 창세기, 에스겔……이렇게 되는데, 그러면 성경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150편까지 있는 시편이고, 1장까지 밖에 없는 요한 2서나 3서나 빌레몬서 같은 짧은 책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제일 양이 많은 시편이나 제일 양이 적은 요한 2서나 3서라 하더라도, 이는 단순히 길이가 길고 짧을 뿐이지, 그 내용은 성경 66권 중에서 모두 똑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도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지만,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성경 중에서 원어로 본다면 가장 짧은 요한3서는 좀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이는 요한이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하는데, 보통 편지라고 하면 그 핵심 내용이 중간에 나옵니다. 그러면 앞부분에 나오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대부분 안부인사이지요. 내용상으로 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요한 3서 2절도 보세요.

요한 3서 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愛する者よ。あなたのたましいが幸いを得ているように、あなたがすべての点で幸いを得、また健康であるように祈ります。


이걸 쉽게 보면 뭐겠어요.

“너 잘 지내니? 하나님 잘 믿으면 네 영혼이 복 받아서 천국 가는 것처럼, 네가 평소에도 모든 일들이 잘 되고 건강하길 바랄게.”

뭐, 말하자면 그런 내용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단순히 요한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한테 하는 안부인사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신 분이 계시지요? 바로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이십니다.

이를 단순히 안부 인사로 받아들이셨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원문 성경 중에서 제일 짧은 성경인 요한3서, 그것도 안부 인사에 불과한 성경구절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 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죽은 다음에 천국에 가는 것만을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모든 일들이 잘되고 강건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구나. 하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되자, 이 말씀으로 한국에서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세우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이 호세아에 있는 말씀을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옛날 이야기로 방치했다면, 이 호세아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말로만 해석하고 말았다면, 그 말씀은 어쩌면 우리에게 죽은 말씀이 되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죽은 말씀이 아닙니다. 미이라나 박제가 아닙니다. 신화나 전설도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도 살아 숨쉬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남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9장 25절~26절
"25.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9章25節~26節
“25.それは、ホセアの書でも神が言っておられるとおりです。「わたしは、わたしの民でない者をわたしの民と呼び、愛されない者を愛される者と呼ぶ。
26.あなたがたはわたしの民ではない、と言われたその場所で、彼らは生ける神の子らと呼ばれる。」”

이 말씀을 두 가지로 구분해 보기로 합니다. 25절에 보면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고,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6절에서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를 정리해 본다면 25절에서는 사람에 주목하고있으며, 26절에는 <그 곳>이라고 하시면서 장소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그가 누구이든 어디에 있는 사람이든 이를 불문하고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를 지금 우리가 들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겠습니다만, 당시로 보면 대단히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을 보더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배웠는지, 그 사람의 배경이 어떠한지에 대한 것이 그 사람의 가치를 정해준다고 한다면, 그 외에도 어디에 사는 지에 대한 것도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고도 하겠지요.

하지만 당시는 이보다도 더욱 차별이 심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에 사는 사람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도 서로 하지 않고 살았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차별이 허물어지고,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한 사람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당한 곳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일컬음을 받게 된다고 성경은 기록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와 연관이 없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육적으로 본다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유대인이 아니에요. 당시 그들의 생각에 따르면 우리는 믿음 바깥에 있는 사람들, 말하자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이방인들입니다.

그러나 육적으로는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주님의 복음이 전해지고, 우리도 믿음을 같게 되어서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높임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사야서 중에서 43장과 11장을 보고자 합니다.

이사야 43장 19절~20절
“19.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見よ、わたしは新しいことを行う。今、それが芽生えている。あなたがたは、それを知らないのか。必ず、わたしは荒野に道を、荒れ地に川を設ける。
野の獣、ジャッカルや、だちょうも、わたしをあがめる。わたしが荒野に水を、荒れ地に川を流れさせ、わたしの民、わたしの選んだ者に飲ませるからだ。


여기서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낸다고 하십니다. 이는 말 그대로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광야나 사막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죽음의 땅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안 믿는 과학자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놀라운 기적들이 사실은 기적이 아니라면서, 이를 어떻게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얄팍한 과학적인 지식에 억지로 끼어 맞추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입증을 못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애굽을 탈출한 성인남성 60만명, 남녀노소를 다 합친다면 대략 2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살 수 있었다는 사실, 이는 절대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과학적 지식으로는 증명을 할 수가 없어요.

광야라고 하는 곳은 그야말로 죽은 땅입니다. 무엇보다 비가 내리지 않아요. 그러니 식물이 자랄 수가 없지요. 햇빛을 막을 만한 그늘조차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아무리 건장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며칠을 버틸 수가 없지요. 그런데 2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40일도 아니고 40년을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능력 말고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말씀은 어떻습니까. 광야에 사막에 강을 낸다고 하세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죽은 땅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죽은 광야 땅에 길이 나고, 죽은 사막 땅에 강이 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절대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곳에 살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죽은 영혼, 절대로 구원 받지 못할 줄 알았던 죽은 영혼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광야에 길이 났어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와, 신기하다! 하고, 박수만 치겠습니까.

우리 앞에 어려움이 처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길을 내주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에 우리 앞에 길이 열렸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보고 박수만 쳐요? 그러면 하나님이 뭐라고 하실까요.


출애굽기 14장 1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主はモーセに言われた。「なぜ、あなたはわたしに向かって叫ぶのか。イスラエルの子らに、前進するように言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서 홍해를 갈라 길을 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만 하고 있겠습니까. 주여~주여~만 하고 있으라고 하십니까. 아닙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내가 목이 말라요. 정말 사막 한 가운데 있는 것만 같아요. 아무도 도와 주지 않아요. 그런데 갑자기 내 앞에서 물이 콸콸콸콸 넘쳐납니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사막에 호수가 생기고 강이 생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목이 마른데 그냥 놀라고 박수만 치고 있어요?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을 어서 마셔야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지쳐 쓰러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힘을 내어 앞으로 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우리가 가야할 곳은 바로 하나님이 인도해주시는 땅, 예수님이 인도해주시는 땅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それから、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全世界に出て行き、すべての造られた者に福音を宣べ伝えなさい。

이 시점에서 우리 한 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요. 단순히 물리적이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 있을 수도 있지만, 예를 들어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자신과 친인척이라고 한다면 가까울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예수님을 안 믿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안 믿는 분들 중에서 본다면, 아, 누구는 잘하면 예수님을 믿을 것도 같은데, 또 그 중에는, 다른 사람은 믿어도 그 사람은 절대로 믿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있지 않으세요?

그야말로 온 천하 만민이 다 예수님을 믿는다 해도 그 사람만은 절대로 예수님을 믿지 않을 거야. 하늘이 두 쪽 나도 그 사람은 절대로 예수님을 믿지 않을 거야


자, 오늘은 그 사람을 한 번 우리 마음 안에 품어 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한테 아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서 교회로 데려오라고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 마음 안에 그 사람을 품고, 기도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 보세요. 하나님을 절대로 믿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잖아요. 완전히 죽은 땅을 하나님께서 강을 내고 물을 내어서 살리신다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우리 한번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해 보십시오, 그러면 어느 순간 길이 열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그렇죠. 물이 있으면 물을 떠다 주고, 길이 열리면 건너가서 함께 복음을 전하게 된다면, 바싹 말랐던 우리 마음이 옥토로 변하고, 금이 쫙쫙 갈라진 그 땅이 살아나는 것처럼, 그 영혼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안에 천국이 임하는 역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그 모습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이사야 11장 6절~8절
“6.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狼は子羊とともに宿り、豹は子やぎとともに伏し、子牛、若獅子、肥えた家畜がともにいて、小さな子どもがこれを追って行く。
雌牛と熊は草をはみ、その子たちはともに伏し、獅子も牛のように藁を食う。
乳飲み子はコブラの穴の上で戯れ、乳離れした子は、まむしの巣に手を伸ばす。


이와 같은 일은 실제로 본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을 마시고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길을 갈 때, 양과 이리가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고, 서로 원수가 되었던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주님께 순종하며 실천할 때에, 마른 땅이 살아나고 마른 영혼이 살아나서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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