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3회 믿음의 상속자
2021년 4월 18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4장 13절~16절
"13.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ローマ人への手紙 4章 13節~16節
“13.というのは、世界の相続人となるという約束が、アブラハムに、あるいは彼の子孫に与えられたのは、律法によってではなく、信仰による義によってであったからです。
14.もし律法による者たちが相続人であるなら、信仰は空しくなり、約束は無効になってしまいます。
15.実際、律法は御怒りを招くものです。律法のないところには違反もありません。
16.そのようなわけで、すべては信仰によるのです。それは、事が恵みによ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こうして、約束がすべての子孫に、すなわち、律法を持つ人々だけでなく、アブラハムの信仰に倣う人々にも保証されるのです。アブラハムは、私たちすべての者の父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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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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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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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29번째 시간으로서 “ 믿음의 상속자” 信仰の相続人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들은 평소보다 조금 난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한 구절씩 꼼꼼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3절입니다.

로마서 4장 13절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3.というのは、世界の相続人となるという約束が、アブラハムに、あるいは彼の子孫に与えられたのは、律法によってではなく、信仰による義によってであったからです。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세상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언제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세상의 상속자로 삼으셨는가 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많은 신학자들은 창세기 17장 4절~6절을 꼽습니다.


창세기 17장 4절~6절
4.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これが、あなたと結ぶわたしの契約である。あなたは多くの国民の父となる。
あなたの名は、もはや、アブラムとは呼ばれない。あなたの名はアブラハムとなる。わたしがあなたを多くの国民の父とするからである。
わたしは、あなたをますます子孫に富ませ、あなたをいくつもの国民とする。王たちが、あなたから出てくるだろう。

이 말씀에 의하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고, 그에게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왕들이 나온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이 언약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세상의 상속자로 삼으셨다고 신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입니다. 오늘 문제는 너무 쉬워서 성경을 조금 아시는 분이시라면 문제를 듣자마자 배꼽을 잡고 데굴데굴 구르며 웃으실 정도로 쉬운 문제입니다.

자,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율법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어떻습니까. 너무 쉬워서 웃음이 나오지 않습니까.


자, 다시 한 번 질문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을 때, 율법이 있었나요? 없었나요?

예,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인도 하에 애굽에서 나올 때 주셨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이 축복을 받았을 때가 언제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다음 구절을 근거로 듭니다.

갈라디아서 3장 17절
“17.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私の言おうとしていることは、こうです。先に神によって結ばれた契約を、その後四百三十年たってできた律法が無効にし、その約束を破棄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미국에서 나온 주석서와 한국 주석서를 참고로 하기도 하는데, 이 부분,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축복이 언제 주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을 보니까, 모두 하나같이 이 갈라디아서를 근거로 들면서 아브라함의 축복이 있고 그 후 430년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사실 오늘 말씀을 전하면서 이 부분은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그러거나 말거나 일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우리가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얼마나 방심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 다시금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창세기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근거로 해서 신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430년 뒤에 율법이 주어졌다는 것인데, 이게 우선 말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 먼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서 ‘430년’이라는 말이 몇 번 나오는지부터 살펴보고자 합니다. 구약, 신약을 통틀어서 ‘430년’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 앞서 살펴본 갈라디아서 3장 17절를 포함해서 모두 4번 등장합니다.

하나는 갈라디아서 3장 17절이라고 하면 두 번째는 창세기 11장 16절~17절입니다.

창세기 11장 16절~17절
“16.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17.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エベルは三十四年生きて、ペレグを生んだ。
エベルはペレグを生んでから四百三十年生き、息子たち、娘たちを生んだ。

그런데 이는 아브라함의 축복이나 율법과는 전혀 상관 없어 보이지요?

그럼 나머지 두 개의 430년은 언제냐 하면, 이는 대단히 의미심장합니다. 그리고 두 개가 연달아 나옵니다.

바로 출애굽기 12장 40절~41절입니다.


출애굽기 12장 40절~41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イスラエルの子らがエジプトに滞在していた期間は、四百三十年であった。
四百三十年が終わった、ちょうどその日に、主の全軍団がエジプトの地を出た。

즉, 말씀에 의하면 야곱과 그의 가족이 당시 애굽에서 총리가 되어 있었던 야곱의 아들 요셉을 의지해서 애굽에 들어간 다음, 430년이 지나서 모세의 인도로 탈출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탈출을 한 후 광야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애굽으로 들어갈 때에 아브라함이 살아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느냐 하실지 모르겠지만, 성경에 나온 연대를 계산해 보면 아브라함은 야곱이 애굽에 들어가기 116년 전에 세상을 떠납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본다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430년 뒤에 율법이 주어졌다는 것인데, 성경 기록에 의하면 율법이 주어지기 430년 전, 그러니까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애굽에 들어갈 때에 이미 아브라함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신학자들의 주장에는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성경이 잘못된 것이냐 하면, 아니요. 그런 식으로 접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책은 100년 200년이 아니지요. 적어도 2000년 이상, 많게는 수 천년 전에 적힌 책입니다. 사실 그처럼 오래된 책을 그것도 이 정도 분량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 1145년에 김부식에 의해 쓰여진 삼국사기라고 하는 점으로 본다면 성경은 그보다도 최소한 1000년 이상 오래된 책을 우리가 이렇게 가지고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발견된 성경 중에서 부분적으로 누락된 곳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잘못 되었다거나 오류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오류가 있다면 이는 성경이 아니라 이를 해석하는 사람에게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성경을 모르는 부분은 모른다고 해야 할 텐데, 이를 학자의 자존심인지 뭔지, 그 모른다고 말하기가 싫어서 억지로 꿰어 맞추려는 경우가 종종 보입니다만, 이는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모르는 점은 모른다고 넘어가는 경우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좀 길어져서 잊어버리셨을 수도 있을 테니까 이 로마서 4장 13절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4장 13절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3.というのは、世界の相続人となるという約束が、アブラハムに、あるいは彼の子孫に与えられたのは、律法によってではなく、信仰による義によってであったからです。

솔직히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 하신 언약’이라고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느 시점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의하면 분명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와 같은 축복을 주셨습니다만, 이 말씀 중에서 확실한 것은 뭐냐 하면,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축복을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을 때, 그 때에 율법은 아직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이와 같은 축복은 율법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주셨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자, 다음 구절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4장 14절
“14.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4.もし律法による者たちが相続人であるなら、信仰は空しくなり、約束は無効になってしまいます。

자, 이 말씀에서 보시면 ‘율법에 속한 자’라고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무슨 말이냐 하면 ‘율법에 의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자’가 바로 ‘율법에 속한 자’라고 하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식당 입구에 이렇게 써 붙여 있었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식사를 드립니다”

이걸 보고 돈이 없어서 밥을 먹을 수 없었던 가난한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딱 들어갔더니, 식당 안에 이렇게 써 붙여 있었습니다.

“다만 식사를 하신 후에 돈을 내야 합니다”

만약에 이렇게 되어 있었다면, 식당 입구에 “배고픈 사람에게는 식사를 드립니다” 라고 하는 간판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하자면 헛것이 되고 맙니다. 어차피 돈을 내야 밥을 준다고 한다면, 그런 간판이 있어봤자 뭐해요. 그런 건 있으나 마나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에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아, 그렇구나!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모두 구원을 받는구나! 하고 믿었더니, 조금 있으니까 뭐래요?

“율법을 행한 사람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되어 있다면 무슨 말이에요?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 하더라도 율법을 행한 사람만 구원을 받는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라는 말은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헛것이 되고 만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여기서 하는 말이, 율법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할례에 대해서 우리가 공부했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은 것은 할례를 받기 전이었어요? 아니면 할례를 받고 난 다음이었어요?

예, 할례를 받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할례라고 하는 것은 축복을 받기 위한 필수조건이 아니라고 했다는 것을 지난 주에 공부했지요.

이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이 율법을 받고 난 다음에 축복을 받았다면 우리도 축복을 받기 위해 율법을 행해야 하겠지만, 아브라함이 상속자로서 축복을 받은 것은 율법을 받기 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축복을 받고 구원을 받는 데에 있어서는 율법을 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필수 조건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대체로 유럽 사람들이 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1940년대에서 50년대에 걸쳐서 영국 총리를 했던 처칠에 대한 일화라고 합니다.

처칠 총리가 그날 국회 일정 때문에 전용차를 타고 급히 국회의사당을 향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특별히 그 날은 조금 늦었기 때문에 운전기사가 과속을 했다고 하는데, 그러자 이를 목격한 경찰관이 차를 세우더랍니다.

그래서 운전기사가 그 경찰한테 말하기를, “이봐, 이 차는 총리 각하 전용차야. 이 차에는 총리 각하가 타고 계셔. 지금 의사당으로 가는 길인데, 시간이 없어서 빨리 가야하니까 번거롭게 굴지 마시게”

당시는 텔레비전이 그리 많이 보급되어 있을 때가 아니라서 사실 총리 얼굴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경찰관이 하는 말이, “저는 총리 각하 성함은 알지만 얼굴은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것은 한 가지 있습니다. 만일 지금 이 차에 타고 계신 분이 진짜 총리 각하시라면 법률을 위반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경찰관은 그렇게 말을 하자 현행법대로 속도위반 딱지를 끊었다고 합니다.

처칠은 비록 딱지를 끊겼지만, 이 경찰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래서 그는 집무실로 돌아오자 런던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한 말이, “아침에 어디어디에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그 경찰관이 내가 총리인데도 철저하게 법률을 지켜가면서 속도위반 단속을 했지 뭔가. 그러니까 이 모범적인 경찰관을 1계급 특진 시키게.”

그러자 런던 경찰청장이 이랬다고 합니다. “총리 각하. 우리 나라 법률에는 속도위반 단속을 했다고 해서 특진을 시켜준다는 조항은 없습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참 대단하지요?

율법을 살펴보면 민법적인 규정도 상당히 있다는 것에 놀랍니다만, 상당부분이 형법과 같은 성격을 띠게 됩니다. 법률 특히 형법은 어떤 법률입니까. 이는 어떤 사람이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응분의 죄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 바로 형법입니다.

형법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은혜가 없습니다. 구원도 없습니다. 오로지 진노, 분노, 죄악, 형벌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나쁜 짓에 대해서 처벌할 수 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행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아무리 그 행위가 비판을 받을만한 짓이었다 하더라도 이를 처벌하는 법조항이 없으면 처벌할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6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고린도후서 3장 6절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神は私たちに、新しい契約に仕える者となる資格を下さいました。文字に仕える者ではなく、御霊に仕える者となる資格です。文字は殺し、御霊は生かすからです。

율법은 우리의 죄를 심판하고 우리를 죽이는 것일 뿐 살리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대통령이든 총리이든 말단 경찰관이든, 그리고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마찬가지로 판단을 받습니다. 율법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 누구도 율법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기록합니까.


골로새서 2장 13절~15절
“13.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背きのうちにあり、また肉の割礼がなく、死んだ者であったあなたがたを、神はキリストとともに生かしてくださいました。私たちのすべての背きを赦し、
私たちに不利な、様々な規定で私たちを責め立てている債務証書を無効にし、それを十字架に釘付けにして取り除いてくださいました。
そして、様々な支配と権威の武装を解除し、それらをキリストの凱旋の行列に捕虜として加えて、さらしものにされました。

우리가 율법 앞에서는 누구 하나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정죄하는 율법 증서를 지워 버리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합니까.

다음 15절을 봅니다.

로마서 4장 15절
“15.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5.実際、律法は御怒りを招くものです。律法のないところには違反もありません。

율법이 있어야지 범죄가 성립하고, 그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할 근거가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를 정죄할 율법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우리를 가두어 둘 근거가 없어집니다. 우리를 죄인이라고 규정할 근거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 동안 죄인으로 낙인이 찍혔던 우리는 모든 죄가 사해지고, 비로소 자유인의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로마서 4장 16절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4장 16절
“16.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6.そのようなわけで、すべては信仰によるのです。それは、事が恵みによ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こうして、約束がすべての子孫に、すなわち、律法を持つ人々だけでなく、アブラハムの信仰に倣う人々にも保証されるのです。アブラハムは、私たちすべての者の父です。

성경은 우리더러 상속자가 된다고 기록합니다. 상속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어떤 집을 상속받았다고 한다면 단지 그 집에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뿐인가요? 아닙니다. 그러면 무슨 권리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소유할 권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그 후손에게까지 상속자가 되게 하신다는데, 이는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후손이라고 하는 것은 율법에 속한 자만이 아니라 믿음에 속한 자라고 하니,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동서를 불문하고, 남녀를 불문하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축복을 상속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상속에 대해서 성경은 놀라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5장 9절~10절
“9.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彼らは新しい歌を歌った。「あなたは、巻物を受け取り、封印を解くのにふさわしい方です。あなたは屠られて、すべての部族、言語、民族、国民の中から、あなたの血によって人々を神のために贖い、
私たちの神のために、彼らを王国とし、祭司とされました。彼らは地を治めるのです。」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그 흘리신 피의 대가로 사람들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합니다. 이는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로 구원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피로 그 죄값을 지불하고, 주님이 택한 사람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뜻이 됩니다. 구원을 해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지금 사는 이 세상에서도 대통령이나 총리면 사람들은 우와 합니다. 대통령이나 총리가 뭐예요. 장관이나 시장, 도지사, 구청장이라 하더라도 대단한 일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큰 나라의 대통령이나 총리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다스리는 땅에서 왕노릇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 텔레비전에서 한국이나 일본이나 장관님들 하시는 걸 보면 참 열심히들 하십니다.

사실 국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위에 있는 인사권자 눈치를 보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때로는 측은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그 인사권자의 판단이나 명령이 항상 합리적이기만 하겠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밑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따라야 합니다. 글쎄요. 저라면 잘 못할 것 같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땅에서 우리가 상속받아 왕노릇 한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그 어떤 벼슬도 비교할 수가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예전에 아프리카에서 선교하시던 분으로부터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거기는 정말 아주 문명의 혜택을 별로 못 받을 정도의 지역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제 오랜 선교사역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자기 책상 위에 있는 포스트잇이 자꾸 눈에 밟히더래요. 저 포스트잇은 구하기도 참 어려운 것인데, 저걸 한국으로 가져갈까 말까. 한국으로 가져가면 정말 요긴하게 잘 쓸 건데……하지만 여기 남아 있는 사람들도 저걸 필요로 할 텐데……그러면서 가져갈까 놔두고 갈까를, 그 포스트잇을 만지작거리면서 한참을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래. 내가 그래도 목사인데, 나보다도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야지……라고 마음 먹고 과감하게 그 포스트잇을 그 아프리카 사역지에 두고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오니까 어때요? 교회 사무실에 가보니까 크고 작은 포스트잇들이 여기저기 막 굴러 다니더래요. 그걸 보고 자기가 아프리카에서 그 포스트잇 하나를 만지작거리면서, 가지고 갈까 두고 갈까를 한 참 고민했던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랐다고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나중에 축복을 받을 자일 뿐만이 아니라, 이미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그까짓 포스트잇 하나에 연연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与え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がたも与えられます。詰め込んだり、揺すって入れたり、盛り上げたりして、気前良く量って懐に入れてもらえます。あなたがたが量るその秤で、あなたがたも量り返してもらえるからです。」

많은 사람들이 왜 축복을 못 받겠습니까. ‘주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아니, 받은 게 있어야 줄 게 아니야.”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게 사실인가요?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없습니까? 아니에요.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돈이나 재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이 몸, 우리가 섬길 수 있는 교회와 우리 가족, 우리 이웃, 모두가 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심기 전에 거둘 수가 있겠습니까. 심어야 거두고 주어야 받는다는 것이 믿음의 법칙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이제 징계를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다 받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채찍에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맞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정죄할 법조문을 모두 제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용서받은 천국 백성으로서,
그리고 장차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상속 받아 왕노릇 할 믿음의 상속자로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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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