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4회 살아난다는 것
2021년 7월 4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6장 1절~4절
“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ローマ人への手紙 6章1節~4節
"1.それでは、どのように言うべきでしょうか。恵みが増し加わるために、私たちは罪にとどまるべきでしょうか。
2.決して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罪に対して死んだ私たちが、どうしてなおも罪のうちに生きていられるでしょうか。
3.それとも、あなたがたは知らないのですか。キリスト・イエスにつくバプテスマを受けた私たちはみな、その死にあずかるバプテスマを受けたのではありませんか。
4.私たちは、キリストの死にあずかるバプテスマによって、キリストとともに葬られたのです。それは、ちょうどキリストが御父の栄光によって死者の中からよみがえられたように、私たちも、新しいいのちに歩むため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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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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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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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40번째 시간으로서 “살아난다는 것” よみがえるということ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이제 로마서 6장을 살펴볼 시간입니다.

오늘 살펴볼 말씀은 총 4구절입니다만, 이를 역시 앞 두 구절과 뒤 두 구절로 나누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앞 두 구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 6장 1절~2절

“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1.それでは、どのように言うべきでしょうか。恵みが増し加わるために、私たちは罪にとどまるべきでしょうか。
2.決して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罪に対して死んだ私たちが、どうしてなおも罪のうちに生きていられるでしょうか。

이 말씀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지금까지 살펴본 로마서 3장 20절 말씀으로 돌아가보아야 하겠습니다.


로마서 3장 20절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なぜなら、人はだれも、律法を行うことによっては神の前に義と認められないからです。律法を通して生じるのは罪の意識です。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우리를 억지로 죄인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율법이 없으면 무엇이 죄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율법이 있게 되면 비로소 무엇이 죄이고 또 무엇이 죄가 아닌지를 깨닫게 됩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이제 율법에 비추어 보니까 나 자신이 이 죄로 범벅이 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양이나 염소 등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는 무슨 뜻이냐 하면 이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하는데, 나를 대신해서 양과 염소를 죽여서 하나님께 바침으로 인해서 용서를 구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제사라고 하는 행위는 슬픔과 기쁨이 동시에 있게 됩니다. 짐승으로 제물을 바친다는 것은, 내가 죽어야 마땅한데 나를 대신해서 이 짐승들의 목숨을 빼앗는 일 아니겠습니까. 내게 죄가 없었더라면 이 짐승들은 죽지 않아도 되는데, 내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죽임을 당하게 되고 불로 태워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니 얼마나 가슴 아파해야 하겠습니까.


반면에 기쁨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양이나 염소들이 나를 대신해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이제 내 죄가 해결되었어요. 이제 정죄를 당하지 않습니다. 내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제 나는 내 죄 때문에 고통받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 줄을 깨닫습니다. 아, 나는 죄인인 줄 몰랐습니다. 그럭저럭 꽤 괜찮은 삶을 살아온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알고 보니 나 자신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큰 슬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어주심으로 인해서, 내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해서 모두 받아 주셨기 때문에, 이제 내 죄는 모두 해결되었어요. 더 이상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안에서 크나큰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시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 41절~43절
41.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ある金貸しから、二人の人が金を借りていた。一人は五百デナリ、もう一人は五十デナリ。
彼らは返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金貸しは二人とも借金を帳消しにしてやった。それでは、二人のうちのどちらが、金貸しをより多く愛するようになるでしょうか。」
シモンが「より多くを帳消しにしてもらったほうだと思います」と答えると、イエスは「あなたの判断は正しい」と言われた。

한 사람은 많은 빚을 졌고 한 사람은 적은 빚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빌려준 사람이 두 사람의 빚을 모두 면제 시켜줬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더 감사하겠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당연히 많은 돈을 면제 받은 사람이 더 감사하겠지요.

지난 주에 살펴보았던 로마서 5장 20절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5장 20절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律法が入って来たのは、違反が増し加わるためでした。しかし、罪の増し加わるところに、恵みも満ちあふれました。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는 죄를 많이 지은 사람도 있고, 또 누구는 죄를 조금 지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죄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서 모두 사함을 받았어요. 그렇다면 죄를 많이 지었던 사람과 죄를 조금 지었던 사람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감사함을 느낄 것인가 하면, 이는 죄를 많이 지었던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말씀을 듣는 분들 중에는, 어? 그래? 그럼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넘친다고 했으니까, 우리가 죄를 그럼 좀 더 지어도 되겠네?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서 성경에는 어떻게 적혀 있습니까.


로마서 6장 1절~2절을 다시 봅니다.

로마서 6장 1절~2절
“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1.それでは、どのように言うべきでしょうか。恵みが増し加わるために、私たちは罪にとどまるべきでしょうか。
2.決して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罪に対して死んだ私たちが、どうしてなおも罪のうちに生きていられるでしょうか。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사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우리가 죄 안에 거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죄에 대해서 이미 죽었는데 어찌 또다시 죄 안에서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언제 죄 안에서 죽었습니까. 갈라디아서 2장 19절~20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19절~20절
“19.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しかし私は、神に生きるために、律法によって律法に死にました。私はキリストとともに十字架につけられました。
もはや私が生きているのではなく、キリストが私のうちに生きておられるのです。今私が肉において生きているいのちは、私を愛し、私のためにご自分を与えてくださった、神の御子に対する信仰によるのです。

여기서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 율법에 규정된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죽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예수님께 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잘못 해서가 아닙니다. 모두가 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우리의 잘못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모든 빚이 탕감되었습니다. 이제 그 많은 빚들이 면제되었으니까,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어요?

예, 세상적으로 본다면 은행 빚이 없어졌으니까 다시 좀 융자를 얻을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믿음 안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야고보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야고보서 2장 10절~11절
10.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律法全体を守っても、一つの点で過ちを犯すなら、その人はすべてについて責任を問われるからです。
「姦淫してはならない」と言われた方は、「殺してはならない」とも言われました。ですから、姦淫しなくても人殺しをすれば、あなたは律法の違反者になっているのです。

신학자들은 율법 개수를 618개로 분류를 합니다. 이 중에서 617가지를 지켰다 하더라도 한 가지를 지키지 못했다면 율법 모두를 안 지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 가운데에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4절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罪があなたがたを支配することはないからです。あなたがたは律法の下にではなく、恵みの下にあるのです。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은혜 아래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3절~4절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6장 3절~4절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それとも、あなたがたは知らないのですか。キリスト・イエスにつくバプテスマを受けた私たちはみな、その死にあずかるバプテスマを受けたのではありませんか。
私たちは、キリストの死にあずかるバプテスマによって、キリストとともに葬られたのです。それは、ちょうどキリストが御父の栄光によって死者の中からよみがえられたように、私たちも、新しいいのちに歩むためです。


여기서 세례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교회에서 실제로 물로 받는 세례나 침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세례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세례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머리에 물을 살짝 붓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물 안에 풍덩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본래 세례라고 합니다. 뭐, 그렇다고 나는 침례를 받았으니까 세례 받은 사람보다 더 축복을 많이 받았다거나, 아니면 나는 세례를 받았으니까 침례를 받은 사람보다 축복을 덜 받았다거나 하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인 것이지요.

이처럼 물에 들어갔다 나온다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냐 하면, 물속으로 풍덩 들어간다는 것은 내가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대로 있다가는 정말 죽게 되지요? 그래서 다시 올라옵니다. 이것은 바로 다시 살아난다는 것, 부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열왕기상 17장에는 엘리야가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도 아들을 살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신약에 보면 예수님도 나사로를 비롯해서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는 장면을 볼 수 있고, 베드로와 바울도 그와 같은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활은 그와 같이 이 땅에서 잠깐 죽었다가 이 땅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 가운데 죽고 난 다음에 우리도 장차 새로운 생명을 얻어 주님의 영광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이제 나중에 은혜 가운데에서 살아날 것이니까, 그 때까지는 죄 안에서 살아도 된다?

이미 2절에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로마서 6장 2절
“2.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2.決して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罪に対して死んだ私たちが、どうしてなおも罪のうちに生きていられるでしょうか。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죄 가운데에서 죽었다면 이제 더 이상 죄 가운데에서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에서 죽고 은혜 가운데에서 살아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살아나야 하겠습니까. 1년 뒤요? 10년 뒤쯤이요?

세상에는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오늘은 일단 먹자’라고 하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만, 우리는 그럼, ‘살아나는 것은 내일부터. 오늘은 일단 죄를 짓자’라고 해야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죄 안에서 죽고, 지금 당장, 새 생명으로 살아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살아나겠습니까. 살아나기 위한 1차 조건은 무엇이냐 하면, 그렇습니다. 죽는 것입니다. 죽어야 다시 살아나게 되지, 펄떡펄떡 살아 있으면서 다시 살아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죽겠습니까. 이는 당연히 육신적인 죽음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우리는 영적으로 죄 가운데에서 죽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은 죄에 대해서 주님의 이름으로 회개하는 것이 죽는 것이고, 이제 주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고서, 주님 안에서 새 생명을 얻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예전에 교회에 다닐 때 보면, 죄 안에서 죽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대요. 이 말씀은 정말 중요합니다.



성경에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빌립보서 3장 8절~9절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それどころか、私の主であるキリスト・イエスを知っていることのすばらしさのゆえに、私はすべてを損と思っています。私はキリストのゆえにすべてを失いましたが、それらはちりあくただと考えています。それは、私がキリストを得て、
キリストにある者と認められ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私は律法による自分の義ではなく、キリストを信じることによる義、すなわち、信仰に基づいて神から与えられる義を持つのです。

우리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주님을 위해서 이처럼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하는 말씀을 들을 때에는 거의 빠짐없이 들었던 말씀이, 술을 끊어라, 담배를 끊어라 라고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당시 술은 물론이요, 담배도 대단히 즐기고 있었던 저로서는 이런 말씀을 몇 번 들어도 은혜가 별로 안 되었습니다.

술이야 안 마시면 된다고 쳐요. 그런데 담배를 피워 보셨던 분들은 알겠습니다만, 오랜 세월 동안 피워 오다가 끊는다는 것은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담배를 끊은 사람들을 보면 내가 금연 몇 년 째다 라고 하는 것을 자랑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뭐, 예수님을 믿으면 담배를 끊어야 한다. 담배를 끊을 수 있게 자기가 안수를 했더니 응답을 받아서 그 사람이 끊게 되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글쎄요. 당시 저는 그와 같은 말씀에 별로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 단순히 내가 담배를 끊기 힘 들어서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이 담배를 끊어야 하는 근거를 성경에서 찾을 수가 없었어요.

뭐, 그래요.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담배라는 것이 없었고, 그래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담배를 끊으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이는 구절도 있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담배가 몸에도 안 좋고, 그리고 담배를 안 피우게 된 다음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담배를 태우시는 분들한테서 그렇게 심한 냄새가 나는 것인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피우는 것보다는 안 피우는 것이 더 낫겠지요.

하지만 그렇다면 담배를 안 피우면 믿음 안에서 거룩해지나요? 술을 안 마시면 더욱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나요? 그런데 예전에 교회에서나 제 주변에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끊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거나 하는 사람들, 주변에 누가 있든 담배를 태우고, 담배를 피우면서 여기저기에 침을 뱉고, 피운 다음에는 아무 데나 휙 하고 버리거나 하면서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은 당장 끊으시기 바랍니다. 이는 성경적으로도 이웃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행위들이에요.

하지만 술 담배 안 하면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 교회에서 본다면 술 담배를 안 하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새 생명을 얻기 위해서 진정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당연히 그 답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야겠지요.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죄악이란 무엇일까 하고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참 많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이미 공부했던 로마서 1장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로마서 1장 29절~31절
“29.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彼らは、あらゆる不義と悪とむさぼりと悪意とに満ちた者、ねたみと殺意と争いと欺きと悪だくみとでいっぱいになった者、陰口を言う者、
そしる者、神を憎む者、人を人と思わぬ者、高ぶる者、大言壮語する者、悪事をたくらむ者、親に逆らう者、
わきまえのない者、約束を破る者、情け知らずの者、慈愛のない者です。

다른 구절도 있긴 합니다만, 시간 관계상 이 곳만 보기로 합니다.

이 세 구절만 해도 여기 안에 몇 가지 죄악이 나오는지 아세요? 예, 자그마치 21가지 죄가 나옵니다. 이어서 32절에 보면 이와 같은 죄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죄를 짓지 않으면 되겠네요. 사실 목사로서는 이 21가지 죄에 대해서 매주 하나씩, 21주니까 5개월 이상에 걸쳐서 말씀을 전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 구절을 가지고, 여기에 나와 있는 죄를 짓지 말자고 하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문제는 뭐냐 하면, 이 21가지, 외우기에는 너무나도 길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십계명도 가물가물한데 언제 21가지를 외워 가지고, 그걸 안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렇게 너무 길고 너무 많다고 하는 것이 좀 우리가 항상 기억하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둘째 문제는 뭘까요. 자, 제가 이 구절을 바탕으로 해서 21가지 죄악들을 잠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잠시 눈을 감으시고, 이 죄악들을 듣고 생각나는 사람을 한 번 머리 속에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몇 명이나 떠오르시는지 한 번 세 보세요.

자, 눈을 감으시고 시작해보겠습니다.

1. 올바르지 않은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
2. 추악스러움으로 가득 찬 사람.
3.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
4. 악한 마음으로 가득 찬 사람.
5. 질투, 시기하는 사람.
6. 사람을 해치는 사람.
7. 분쟁이나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
8. 사람을 속이는 사람.
9. 성격이 참 고약한 사람.
10. 뒤에서 남말을 많이 하는 사람.
11. 서로 헐뜯는 사람,
12. 하나님이 미워하는 사람,
13. 건방진 사람.
14. 교만한 사람.
15. 뻑하면 저기 자랑을 늘어늫는 사람.
16. 나쁜 짓만 골라서 하려는 사람.
17. 부모 말씀을 안 듣는 사람.
18. 어리석은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
19. 사람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사람.
20.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
21. 사랑이 없는 사람

1.不正で満ちている人
2.醜い心で満ちている人
3.欲に満ちている人
4.悪意に満ちている人
5.ねたみやすい人
6.殺意のある人
7.争いを好む人
8.人を欺く人
9.悪だくみをする人
10.陰口をたたく人
11.人を中傷する人
12.神様を憎む人
13.人を侮る人
14.高ぶる人
15.自慢をしたがる人
16.悪事をたくらむ人
17.親に逆らう人
18.浅はかな人
19.不誠実な人
20.情けのない人
21.無慈悲で残忍な人

자, 지금 로마서 1장 29절~31절에 기록된 21가지 죄악을 여러분께 말씀 드렸습니다.

두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 여러분께서는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몇 명 정도 떠올리셨습니까.
그리고 두 번째 질문. 이 21가지를 말씀 드리는 중에서 여러분께서는 몇 번이나 자기 자신을 떠올리셨습니까.

이 21가지를 말씀 드릴 때마다, 매번 자기 이름 밖에는 떠오르지 않아요? 아, 정말 훌륭하십니다. 주님의 칭찬을 받아 마땅하신 분이십니다. 주님의 놀라운 축복이 있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그렇다면 다른 분들은 어떠세요? 자기 이름이 떠오르기는 하나요? 이게 바로 문제입니다. 이는 100% 제 짐작입니다만, 한국에 있는 교회나 아니면 전세계에있는 한인교회까지 포함을 해서 반드시 매 주일마다 어느 교회에서는 이 로마서 1장 29절~31절까지를 주제로 해서 설교 말씀이 선포되고 있을 것입니다.


아니, 그게 잘못이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가 뭐냐 하면, 이를 들을 때마다 우리 마음 안에는 어떤 생각이 들게 되냐 하면, 그래, 맞아, 그래서 이 사람은 잘못 됐어, 저 사람이야말로 회개해야 한다니까. 이러면서 우리 마음 안에는 어느새 자기 자신을 바로 잡으려고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탓하려는 마음이 더 강하게 뿌리내리는 경우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우리 자신이 죄 안에서 죽고 주님과 함께 은혜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시점에서 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누가복음 6장 37절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さばいてはいけません。そうすれば、あなたがたもさばかれません。人を不義に定めてはいけません。そうすれば、あなたがたも不義に定められません。赦し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がたも赦されます。

요한복음 8장 7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しかし、彼らが問い続けるので、イエスは身を起こして言われた。「あなたがたの中で罪のない者が、まずこの人に石を投げなさい。」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정죄한다는 것은, 그 마음 아래에는 어떤 감정이 깔려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옳다는 감정입니다.

백 보 양보를 해서 나도 잘못이 있지만 저 사람보다는 낫다고 하는 감정이 깔려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남들을 비판하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 사람도 나쁘지만 나도 저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내가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비난하거나 정죄할 수가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말합니다. 바꾼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정치인들이 아닐까 합니다.

선거철이 되면 출마한 후보들은 하나같이 이것이 잘못되었다, 저것을 바꾸어야 한다. 변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절대로 하지 않는 말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잘못되었다. 내가 바뀌어야 한다. 내가 변화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뭐, 정치인들은 항상 그래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기껏 출마를 해서 나를 찍어달라고 하면서, 내가 잘못했다고 한다면 그것도 이상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우리들까지도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바뀌어야 합니다.

남의 탓을 하고, 환경 탓을 하고, 세상 탓을 했던 우리가 먼저 우리 스스로의 잘못을 회개하고, 우리가 먼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죄 안에서 죽고, 주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어 살아나는 모습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마서 8장 5절~6절
“5.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肉に従う者は肉に属することを考えますが、御霊に従う者は御霊に属することを考えます。
肉の思いは死ですが、御霊の思いはいのちと平安です。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その教えとは、あなたがたの以前の生活について言えば、人を欺く情欲によって腐敗していく古い人を、あなたがたが脱ぎ捨てること、
また、あなたがたが霊と心において新しくされ続け、
真理に基づく義と聖をもって、神にかたどり造られた新しい人を着ることでした。

이제 우리는 육신을 따르며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살아나서, 영을 따르며 생명과 평안을 얻고, 새 사람을 입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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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