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비쿼터스에서 임마누엘로 ♬
2007년 9월 16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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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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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예배 시간. 말씀을 전하시기 전 목사님께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라는 말씀을 하시면 “아멘” 이라는 목소리가 대성전과 지성전 곳곳에 울려 퍼집니다. 너무 이 분위기에 익숙해지면 마치 무슨 암호나 조건반사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사실은 매우 중요하고도 심오한 질문입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귀에 익숙하게 된 ‘유비쿼터스’. 이는 영어로 ‘omnipresence’ 라고도 하며, 라틴어 ‘유비퀴타스(ubiquitas)’에서 온 말로서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시다”는 뜻입니다. 우리말로는 편재(遍在),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서는 ‘무소부재(無所不在)의 하나님’, 즉 안 계신 곳은 없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거 FUZY, CHAOS 등등 많은 외래어가 그랬듯 이 단어도 여기저기에 쓰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에나 계시다는 점을 인정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우리가 이른바 ‘유비쿼터스’라는 이름의 전자기기를 사용할 때처럼 하나님을 만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일까요.
‘유비쿼터스’라고 주장하는 핸드폰이나 인터넷 시스템 등을 보면 대표적으로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전기’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전원’이 달려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기계라고는 하나 전기가 흐르고 스위치를 켜야 비로소 그 편리한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도 ‘전기’와 ‘전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전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은 그저 교회를 오랫동안 다녀서 자연스레 생기는 것도 아니며, 학문을 통해서 얻을 수도 없고, 오직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습니다. 다음은 요한복음 14장 8절입니다.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3년여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사도들도, 그리고 바로 눈앞에 예수님이 계신데도 불구하고 “예수님, 당신만으로는 아직 못 믿겠어요. 당신 아버지를 한 번 보여주세요” 라며 여전히 약한 믿음의 모습을 보이지만, 예수님께서 부활 • 승천하시고 성령을 받고 확고한 믿음을 가진 후에는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며 목숨을 걸고 선교를 떠나기에 이릅니다.
다음으로 ‘전원’에 해당되는 것은 기도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매우 가정적이고 가족사랑에 넘치는 분이셨으나, 집에 들어가면 아직 어린 외동딸이 그날 하루 있었던 일을 몇 시간이고 자신에게 말해준다고 하는데, 아무리 귀여운 딸이라고 해도,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니 다소 귀찮게 여겨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금 특이하십니다. 몇 날 며칠을, 하루에 몇 번이고 말씀 드려도 도무지 성가시다는 말씀을 안 하시며, 언제 어디서든지 ‘유비쿼터스’의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 귀를 기울여주시며 항상 위로와 응답을 주십니다. 마치 언제라도 스위치를 켜면 작동되는 핸드폰이나 컴퓨터처럼 말입니다.
단지 어디에나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디에나 계신다(유비쿼터스)는 것이 아닌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임마누엘)는 믿음과,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를 드릴 때에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하시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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