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밑그림 ♬
2008년 05월 04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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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선교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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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그 미국 라스베가스에 있는 시저스팔레스 호텔에는 그 유명한 다윗상 상 (다비드 상)이 있습니다. 이는 미켈란젤로가 1504년에 완성한 것으로서 오리지널 조각상은 이태리 피렌체에 있는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미국에 있는 것은 모조품입니다. 비록 진품은 아니라도 재료와 무게, 그리고 크기 모두를 동일하게 만들어놓았다고 하니, 유럽에 가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그것 만으로도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전에도 사진을 통해 몇 번 본 적은 있었으나 역시 그 큰 조각을 마주 대했을 때에 느끼는 박력은 글이나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이나 크고, 무엇보다 다가오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다윗 상 뒤로 돌아가서 보니, 그는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손에는 돌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수건을 들고 지금 막 골리앗을 향해 물매를 던지려고 하는 긴박한 상황인 사무엘상 17장 41절 이하를 묘사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다윗 상은 미술학적으로도 강한 힘과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상징으로 평가 받는 작품으로서 예술 역사상으로도 이 작품만큼 유명한 조각은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만들면서 “아름답고 정교한 조각상들은 원래 살아 있는 바위 안에 영원히 감금되어 있었던 것이며, 내 직업은 그저 바위와 조각칼을 들고 바위 안에 갇혀 있던 그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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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읽었던 외국 소설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도시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먼 지방까지 여행을 갔었는데, 그 고장에서는 이름 없는 훌륭한 나이 든 조각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노인은 나무토막을 가져다가 몇 안 되는 도구를 사용하여 단시간 내에 멋진 말 조각상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외견상으로 보나 그 분의 차림새로 보나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분은 아니었으며, 그저 어느 시골에나 계신 동네 할아버지처럼 보였습니다. 나무토막이 크면 큰 말을, 작은 나무라면 작은 말을 그 크기에 맞도록 기막히게 깎아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하기에 주인공은 그 노인 조각가에게 묻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그처럼 볼품없는 나무토막으로 훌륭하게 말을 조각하십니까. 무슨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으신가요?”
이 질문을 듣자 노인은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호탕하게 웃습니다.
“허허. 이거 말인가? 별거 아니야. 나무토막 중에서 말이 아닌 것만 깎아내면 돼.”
* * *
많은 분들은 ‘연금술’ 또는 ‘연금술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간혹 언론에서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선수 감독들을 ‘연금술사’라고도 하는 것 같은데,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이 ‘연금술’이라는 것은 값이 나가지 않는 금속(비금속:卑金屬)으로 하여금 화학적 방법을 통하여 귀금속 특히 금을 제조하려던 기술입니다.
연금술에 대한 역사는 생각보다 많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며,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시대 때부터 권력자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시도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그만큼 오래 전부터 ‘금’에 대한 가치가 높았다는 뜻이겠지요.
기원전부터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시행착오를 거듭해오던 연금술로 인하여 황산이나 질산, 염산 같은 새로운 원소의 발견이나 학문적 발전을 이루어오긴 하였으나 결국 연금술의 본래 목적인 ‘금’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습니다. 과거에 수 많은 지식과 방법을 동원해도 성공하지 못했던 연금술은 연금술사들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러 물질들을 섞은 혼합물로는 금을 제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현대 과학에서 금은 ‘Au’라는 기호를 갖는 79번째 원소이며 즉, 연금술사들의 예상과는 달리 금은 어떠한 물질들이 섞여서 만들어진 혼합물질이 아니라 단일원소로 되어 있습니다. 산소와 수소를 섞어 물을 만들 수는 있으나 어떠한 물질을 서로 혼합하여 산소나 수소를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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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로 하여금 그 희생과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실 정도로 사랑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다른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며 아무리 선한 물질들을 서로 결합시킨다 하더라도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값진 것입니다. 인간은 너무나도 많은 죄와 탐욕으로 뭉쳐진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바위에 갇힌 반짝이는 정금과도 같은 우리의 영혼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위 속에 갇힌 우리를 깎아내기 위한 조각칼로서 주님의 귀한 보혈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힘이 부족하여 무엇을 깎아내야 하고 무엇을 보존해야 할지를 우리 스스로는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 힘으로 어떻게든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려 하다가 어이 없는 상처를 입고 말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결국 오직 성령님께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버리고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를 주님의 뜻에 맡길 때에 진실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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