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회 율법의 참뜻
2020년 8월 2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7장 7절 신약 248페이지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ローマ人への手紙 7章7節
“それでは、どのように言うべきでしょうか。律法は罪なのでしょうか。決して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むしろ、律法 によらなければ、私は罪を知ることはなかったでしょう。実際、律法が「隣人のものを欲してはならない」と言わなければ、私は欲望を知らなかったでしょう。”

한국어 동영상
https://youtu.be/94ccympZn94

일본어 동영상
https://youtu.be/nq6oAyLprlg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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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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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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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율법의 참뜻” 律法の真意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저를 포함해서 교회까지 오실 때에 차를 타고 오셨을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운전을 하고 오시는 경우도 있겠지요.

제가 한국에 있을 때에는 동네 교회에 갈 때 꼭 차를 타지 않더라도 걸어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차를 타든 걷든 간에 이동을 하다 보면 우리가 맞닥뜨리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신호등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도 운전을 하다 보면 이 신호등이 참으로 묘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분명 그런 경험이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만, 급할 때면 급할수록 어쩌면 그렇게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잘 맞는지, 빨긴 신호가 수도 없이 잘 걸립니다. 정말 하나 걸러 하나씩, 마음이 더 급할 때면 조금 가다 걸리고, 또 조금 가다 걸리고, 연속으로 몇 번씩 걸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정말 내려서 그 신호등을 한 대 때려주고 싶어요. 물론 그럴 수도 없습니다. 다들 내려서 때릴까 봐 대부분 신호등은 저 높은 곳에 매달려 있지요. 그래서 때릴 수도 없어요. 정말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때면 어때요? 예를 들어서 운전을 하고 있는데 메일이나 카톡이 왔어요. 하지만 운전을 하고 있으면 확인할 수도 없잖아요. 옆에 저희 집사람이라도 있으면 좀 확인을 해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 혼자인 경우에는 그러지도 못합니다. 급할 경우에는 길 옆에 세우기라도 하면 되겠지만, 뭐 그렇게 급한 용무라면 카톡이나 메일이 아니라 전화가 걸려 왔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궁금하잖아요? 그러면 이제 신호라도 걸리면 확인해봐야겠다고 하는데, 꼭 그럴 때일수록 또 기가 막히게 신호가 안 걸립니다. 뭐, 심할 때에는 10분~20분 정도 그냥 파란 신호가 착착 떨어져서 달릴 때도 있어요. 또 그럴 때는 별로 급한 일도 없습니다.

뭐, 사람사리가 다 그렇다고는 합니다만 이 신호등조차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인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무리 급하다고 하더라도 신호를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일본에서는 일반 승용차인 경우 빨간 신호를 무시하면 벌금 9천 엔입니다. 그리고 속도를 15킬로 정도를 위반해도 9천엔, 그 이상은 12,000엔, 15,000엔……이런 식으로 늘어납니다. 그야말로 적지 않은 돈이 나가는 셈이지요.

왜 이렇게 벌금을 내야 하느냐 하면 이는 도로교통법에 규정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아마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면허를 따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나라 중 하나에 속할 것입니다. 시험도 어렵고 일반적으로 면허를 따는 데에 드는 비용만 하더라도 최소한 30만 엔 정도라고 하지요.

거기다가 이처럼 규정도 까다롭고 한 번 걸리면 인정사정 없이 딱지를 떼이게 됩니다. 옛날에는 한국에 보면 좀 봐주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 같으면 엄격해지면 엄격해졌지 그렇게 봐주거나 하는 일은 없어졌다고 하지요.

자, 그러면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이 참 살기가 힘든 나라라고 생각되시나요? 우리는 무엇인가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지난 한 주도 그렇게 차를 많이 타고 바깥에 왔다 갔다 하면서도, 그리고 오늘도 교회까지 올 때 차를 타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안 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아,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셔서 그런 것입니다만, 세상적으로 본다면? 예, 그렇습니다. 신호등이 있었기 때문이요 도로교통법이 있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신호등은 내 앞길을 막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가는데 다른 차들이 나오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깜빡깜빡 잊고는, 도대체 내 앞길을 가로막는 신호등, 나를 빨리 달리지 못하게 만드는 속도제한……이렇게만 생각을 하니 불평불만이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어떨까요.

신명기 25장에 나와 있는 율법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신명기 25장 4절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脱穀をしている牛に口籠(くつこ)をはめてはならない。

이는 무슨 뜻이냐 하면 밀 같은 곡식을 거두고 난 다음에는 껍질이 있기 때문에 타작을 해야 합니다. 당시 타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만, 그 중 하나는 소한테 이렇게 밟게 해가지고 타작을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발생을 하냐 하면, 소가 타작을 하나가 거기 떨어져 있는 낟알을 주워먹기도 하게 되는 것이죠.

사람이 기껏 공들여서 길러온 곡식을 이제 간신히 추수를 해서 타작을 하려는 상황인데, 이를 소들이 일하면서 주어먹으면 아깝잖아요? 그래서 그 때까지는 소 입에 망을 씌우고 일을 시켰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건가요? 아니요 오히려 사람의 지혜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니, 뭐 이런 것까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까 싶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누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처럼 자신이 만드신 짐승까지도 아끼도록 명령하신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됩니까. 정말 자연을 사랑하고 동물을 사랑하라…… 물론 나쁜 말은 아니지요.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9장에 보면 이 구절에 대해서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9절~10절
“9.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モーセの律法には「脱穀をしている牛に口籠をはめてはならない」と書いてあります。はたして神は、牛のことを気にかけておられるのでしょうか。
私たちのために言っておられるのではありませんか。そうです。私たちのために書かれているのです。なぜなら、耕す者が望みを持って耕し、脱穀する者が分配を受ける望みを持って仕事をするのは、当然だからです。

소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하신 것은, 이는 소를 위해서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함으로 인해서 득을 보는 것은 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래요. 사람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밭을 가는 사람도 사람이지만 탈곡하는 소한테도 소망이 있어야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소가 일을 하는데 배가 고파서 힘이 떨어지고 픽픽 쓰러지고 하면 그것은 누구 손해가 되겠습니까. 이는 다름 아닌 그 주인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겠지요. 다시 말해서 소가 일을 하면서 좀 주워먹도록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에서 하신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와 비슷한 규정들이 율법에는 꽤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9절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あなたの土地の初穂の最上のものを、あなたの神、主の家に持って来なければならない。あなたは子やぎをその母の乳で煮てはならない。

레위기 22장 27절
“수소나 양이나 염소가 나거든 이레 동안 그것의 어미와 같이 있게 하라 여덟째 날 이후로는 여호와께 화제로 예물을 드리면 기쁘게 받으심이 되리라”

「牛か羊かやぎが生まれたときは、七日間、その母親のもとに置いておく。八日目以後、それは主への食物のささげ物として受け入れられる。

먼저 출애굽기 23장 19절에 보면 염소 새끼를 요리할 때 염소 젖으로 삶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때 쓰는 염소 젖을 그 새끼의 어미 젖으로 삶지 말라고 하고 계신 것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냐 하면, 당시 고대 가나안 사람들의 풍습에는 주술적인 의미를 담아서, 새끼 염소를 요리할 때에, 그 새끼 염소의 어미 젖을 쓰면 맛이 더 좋아진다고 사람들이 믿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물론 겉보기는 그 새끼 염소의 어미 젖이나 다른 염소 젖이나 같을지는 모르지만, 본래 어미의 젖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 새끼가 건강하게 자라나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그 젖으로 새끼를 삶는다는 것이, 사실 이 얼마나 잔인한 일입니까.

그리고 레위기 22장 27절에서 보면 당시에는 하나님께 새끼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일이 있었습니다만, 그 때도 바로 태어난 것을 곧바로 드리지 말고, 7일 정도는 어미와 같이 있게 하고, 그 이후에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은 말씀을 친히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보면 정말로 하나님은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요, 세심한 데까지 배려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 여기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출애굽기 23장 19절이나 레위기 22장 27절의 기록이 양이나 염소를 위한 율법인가요?

만약에 이와 같은 규정이 양이나 염소를 위한 율법이라고 한다면, 이는 말하자면 도로교통법이 신호등과 도로 표지판을 위한 법률이라고 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니, 도로교통법이 신호등이나 무슨 횡단보도나 도로 표지판 좋으라고 만들어놓은 법률인가요? 아니에요. 사람들을 위해서,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 도로교통법입니다. 그리고 이는 다른 법률이나 규정들도 다 마찬가지지요. 과거에는 독재자나 특정 소수 기득권 세력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법률도 있었다고 합니다만, 이는 악법입니다. 반드시 없어져야 할 법들이지요.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닌 대부분의 헌법이나 법률, 법령, 조례 같은 규정들은, 이는 동물이나 식물과도 같은 자연을 훼손하면 안 된다고 하는 법률도 모두 포함해서, 모두가 다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율법들은 소나 양이나 염소 좋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잔인한 것에서 떠나고, 사람에 비한다면 아주 하찮다고도 할 수 있는 짐승한테까지도 자비를 베푸는 마음을 가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아직 다행히 일본에서는 위반 딱지를 뗀 적은 없습니다만, 다른 나라에 있을 때에는 몇 번 뗀 적이 있습니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속도위반이지요. ㅎㅎ

그런데 그걸 뗄 때에 보면,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감사가 넘쳐 나오겠습니까. 할렐루야. 딱지를 떼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웬만해서는 안 나오겠지요. 오히려, 아이, 참 남들은 안 걸리는데 나만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 그런 생각이 안 들겠습니까.

하지만 그와 같은 법률, 누구를 위해서 만들어졌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이 또한 은혜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경찰에 안 잡히고 그대로 갔다가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다른 것에 부딪치거나 하면 이는 돈 몇 푼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 전에 그런 일이 있을까 봐, 벌써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그 정말 바쁜 경찰 아저씨들을 친히 그 자리까지 보내주셔서, 미리 큰 사고를 막게 하시고, 돈 몇 푼 내고 다시금 안전운전을 하게 하셨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감사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는 제가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히브리서 12장 5절~8절
“5.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そして、あなたがたに向かって子どもたちに対するように語られた、この励 ましのことばを忘れています。「わが子よ、主の訓練を軽んじてはならない。主に叱られて気落ちしてはならない。
主はその愛する者を訓練し、受け入れるすべての子に、むちを加えられるのだから。」
訓練として耐え忍びなさい。神はあなたがたを子として扱っておられるのです。父が訓練しない子がいるでしょうか。
もしあなたがたが、すべての子が受けている訓練を受けていないとしたら、私生児であって、本当の子ではありません。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참뜻인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율법에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의 시작이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20장 11절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それは主が六日間で、天と地と海、またそれらの中のすべてのものを造り、七日目に休んだからである。それゆえ、主は安息日を祝福し、これを聖なるものとした。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를 지으시고 마지막 날에 쉬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피곤해서 쉬셨습니까.

이사야 40장 28절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あなたは知らないのか。聞いたことがないのか。主は永遠の神、地の果てまで創造した方。疲れることなく、弱ることなく、その英知は測り知れない。

시편 121편 4절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見よ イスラエルを守る方は まどろむこともなく 眠ることもない。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피곤하지도 않으시고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다고 기록합니다. 6일이 아니라 600년, 6000년 동안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더라도, 영원히 피곤하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왜 쉬셨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쉬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쉬어 주신 것입니다.


회사에서 사장님이 퇴근도 안 하고 잠도 안 자고, 막 벌건 눈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고 있어요. 밥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셔요. 그런 상황에서 밑에 있는 직원이,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윗사람이 쉬어야 아랫사람도 쉴 수 있는 것이지요.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이 세상에 있는 법률 중에서는 독재자나 권력자를 위한 악법이 더러 있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율법은 하나님을 위한 법이 아닙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본다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어디를 차를 몰고 갔다가 집에 도착해서 차를 세울 때 보면, 다른 아파트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다 지정된 장소가 있잖아요? 저희 집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제가 세우는 곳 바로 옆에 보면 항상 검정색 차가 있어요. 그것도 작은 차가 아니라 좀 어느 정도 몸집이 있는 SUV 차량입니다. 그리고 저희 차를 세워 놓는 곳을 보면, 앞에 있는 공간이 그리 넓은 편이 아니거든요.

자, 그러면 오늘은 좀 간단한 문제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어디 갔다가 이제 집에 도착했어요. 차를 주차하려고 해요. 그러면 옆에 그 제법 몸집이 큰 검은 SUV 차가 서 있는 게 주차하기 편할까요. 아니면 안 서있는 게 주차하기 편할까요.

금방 생각을 하면 아니, 당연히 옆에 아무 것도 없는 게 차를 세우기 편하겠죠. 잘못했다가 긁히기라도 하면 어떡합니까.

하지만 실제로 차를 세우다 보면요,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제가 지금 이 집에 산 지가 벌써 2년이 넘었는데, 실제로 운전을 하다 보면, 그 차가 거기 서 있는 편이 오히려 주차하기가 훨씬 편합니다. 왜냐하면 일단 땅바닥에 그려진 그 주차 라인이 좀 희미합니다. 그래서 낮에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예요.

그런데 주차를 할 때에 그 차가 서 있으면, 라인을 보지 않더라도 그 서 있는 차를 조심하면서 끼고 돌면 정확하게 주차 위치에 세울 수가 있어요.

하지만 그 차가 거기 안 서 있으면, 기준이 되는 것이 없으니까 오히려 좀 주차 위치에서 빗나가버리는 바람에 다시 주차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차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아, 이게 바로 율법이구나. 이 차가 여기 서 있어서 불편하게 느낄 때도 있지만, 이 차가 여기 세워져 있는 덕분에 내가 이를 피하면서 제대로 된 곳에 세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7장 7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それでは、どのように言うべきでしょうか。律法は罪なのでしょうか。決して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むしろ、律法 によらなければ、私は罪を知ることはなかったでしょう。実際、律法が「隣人のものを欲してはならない」と言わなければ、私は欲望を知らなかったでしょう。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어디로 가면 천국인지 어디로 가면 지옥인지 우리는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시고 계명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명확히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일, 예수님을 믿는 일이 어떨 때는 참 귀찮을 때도 있고,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일이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정말 마음은 급한데 빨간 신호등에 걸렸을 때 내려서 신호등을 막 때려주고 싶을 때처럼, 정말 힘든 일은 계속되고, 생각대로 일이 안 풀리고 속이 상하고 답답할 때 당장 하나님 앞에 가서, 정말 이럴 수가 있냐고, 어떻게 나한테 이러시느냐고 따지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양과 염소까지도 잔인하게 대하지 말라고 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이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私たちすべてのために、ご自分の御子さえも惜しむことなく死に渡された神が、どうして、御子とともにすべてのものを、私たちに恵 んでくださらないことがあるでしょうか。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해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에게 더 이상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神を愛する人たち、すなわち、神のご計画にしたがって召された人たちのためには、すべてのことがともに働いて益となる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의 참뜻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마침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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