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3회 예수님 것으로서의 사명
20209월 27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장 6절~8절 신약 239페이지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ローマ人への手紙1章6節~8節
“その異邦人たちの中にあって、あなたがたも召されてイエス・キリストのものとなりました──ローマにいるすべての、神に愛され、召された聖徒たちへ。私たちの父なる神と主イエス・キリストから、 恵 みと平安があなたがたにありますように。まず初めに、私はあなたがたすべてについて、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私の神に感謝します。全世界であなたがたの信仰が語り伝えられているから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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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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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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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4번째 시간으로서 “예수님 것으로서의 사명” イエス様のものとしての使命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오늘 본문 말씀 중에서 1장 6절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1장 6절
6.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その異邦人たちの中にあって、あなたがたも召されてイエス・キリストのものとなりました──

여기서 <그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를 알기 위해서는 지난 주에 살펴보았던 로마서 1장 5절을 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1장 5절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이 구절에 의하면 예수님으로부터 사도의 직분을 받은 바울은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서 순종하게 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구절인 <그들 중에서>라고 되어 있으니까 여기서 <그들>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로마서 1장 6절을 다시 한 번 보면, 우리도 이방인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다……라고 하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글에 보면 이 번역,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것> 그러니까 소유격으로 번역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무슨 번역판을 사용해야지만 된다고 하면서, 옛날에 어떤 기독교 신문을 보니까 아주 신문광고까지 내면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은 어디가 틀렸다, 어디가 잘못되어 있다, 하는 그런 내용을 싣기도 하는 분들이 계신데, 자꾸 이런 것에 휩쓸리다 보면 성경을 읽을 때 은혜가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이 안 들어와요. 이것도 틀렸고 저것도 틀렸고, 그러면 뭐가 맞냐 하면 무슨 무슨 성경을 써야지만 된다고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런 말들을 잘 들어보면 결국 그 사람, 자기가 하는 말이 맞고 다른 사람들은 다 틀렸다, 하는 이야기예요.

이와 같은 일은 한국만이 아닙니다. 외국에서도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합니다. 예전에 미국에 보니까,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성경이 NIV라는 성경이 있는데, 이 성경은 어디가 틀렸고 어디가 잘못됐고 하는 것을 아예 책으로 출판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좀 문제가 있는 성경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반적인 기독교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성경은 모두 훌륭한 분들이 번역을 한 것이고 다양하게 검증된 책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습니다. 혹시 이 성경은 좀 이상한 것이 아닌지 궁금할 경우에는 저한테 물어보시거나 아니면 다른 목사님께 여쭈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한글 개역개정이나 일본 신개역2017에 보면 역시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번역되어 있기 때문에 본문 내용을 따라 말씀을 전하기로 하겠습니다.

이 로마서는 말 그대로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지금은 로마 쪽에 보면 바티칸도 있고 큰 교회들도 있습니다만,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입니다.


사실 바울은 아직 이 당시에 로마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로마에 있는 교회는 바울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방지역인 로마에 교회가 세워지고, 그리고 바울이 어떻게 이를 알고 로마에 서한을 보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썼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리고 그 내용이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로마서라고 하는 점 또한 틀림이 없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오늘 6절 말씀에서 로마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우리가 본다면 그다지 감동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율법이나 성경은 이방인들에게 전해져서는 안 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추측입니다만, 그 당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다 하더라도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 있어서는 어딘지 모르는 열등감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었다고 여겨집니다만, 이 점에 대해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당신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다”(あなたがたも召されてイエス・キリストのものとなりました)라고 하는 말은 크나큰 힘과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사람이든 일본사람이든 간에 우리는 육적으로는 유대인이 아닙니다만, 영적인 유대인,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 영적인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었다(召されてイエス・キリストのものとなりました)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도 한 가지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질문도 선택지가 있습니다만, 조금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끝까지 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자 질문입니다. 우리는 방금 우리가 예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예수님의 것일까요.

1번 예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2번 기타

자, 제 질문 취지를 아시는 분들께서는 어쩌면 고개를 좀 갸우뚱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 평소에 저는 뭐라고 말씀 드렸습니까. 제가 드리는 선택지 중에서 <기타>가 있으면 대부분 그게 정답이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음?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의 것이라고 하는 이유가, 예수님이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이 아니라는 건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으실 것입니다.

자, 그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입고 계신 옷, 누구의 것입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스마트폰, 누구의 것입니까. 예, 혹시 남의 옷을 입고 계시거나, 뭐 그럴 수는 있겠습니다만, 혹시 남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계시거나 하지는 않겠지요? 대부분 자신의 옷을 입고 있고, 자신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 옷이나 스마트폰이 여러분 것이라는 이유가 여러분이 직접 만드셨기 때문인가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뭐, 옷 정도는 솜씨가 좋다면 직접 만드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리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하더라도 스마트폰을 처음부터 조립해서 자기고 다시는 사람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서 손수 만들지도 않은 옷인데도 불구하고, 손수 납땜질을 해가면서 조립한 스마트폰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여러분 것이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값을 치르고 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것이 되는 경우가 반드시 자기가 돈을 내고 사야지만 되는 것인가요?

그것만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거나 하더라도 그것은 내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요한계시록 5장 9절~10절
“9.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彼らは新しい歌を歌った。「あなたは、巻物 を受け取り、封印を解くのにふさわしい方です。あなたは屠られて、すべての部族、言語、民族、国民の中から、あなたの血によって人々を神のために贖い、
私たちの神のために、彼らを王国とし、祭司とされました。彼らは地を治めるのです。」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값을 치르셨습니다. 무엇으로 값을 치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죄악 속에 있는 우리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흘리신 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셨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것이요, 또한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슬퍼해야 합니까? 절망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로마서 1장 7절
“7.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ローマにいるすべての、神に愛され、召された聖徒たちへ。私たちの父なる神と主イエス・キリストから、恵みと平安があなたがたにありますように。

우리는 이제 우리 스스로 애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넘쳐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요 예수님의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는다면 은혜와 평강이 넘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텔레비전에서 어떤 분이 하시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이 분은 어린이집 교사에요. 그런데 이 분이 흥미로운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자기가 예전에 탈북자 가족 중에서 그 어린이를 돌봐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한국의 일반 아이들과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뭐냐 하면, <자기 것>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무슨 물건을 쓰라고 주어도 조금 쓰다가 아무데나 내팽개쳐버린대요. 그리고 전혀 물건을 소중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게 아무래도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이다 보니까 <내 것>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내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생각을 아예 안 한다고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누구누구야, 이건 네 것이니까 네 이름을 적어놓고, 소중하게 다루어야 해. 하고 가르쳤는데, 이것을 이해하는 데에 의외로 시간이 걸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것, 우리가 예수님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것, 예수님의 것이라고 한다면, 그냥 가만히 할렐루야 하고만 있으면 되는 건가요?

아니요.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사야 5장 1절~2절
“1.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さあ、わたしは歌おう。わが愛する者のために。そのぶどう畑についての、わが愛の歌を。わが愛する者は、よく肥えた山腹にぶどう畑を持っていた。
彼はそこを掘り起こして、石を除き、そこに良いぶどうを植え、その中にやぐらを立 て、その中にぶどうの踏み場まで掘り、ぶどうがなるのを心待ちにしていた。ところが、酸いぶどうができてしまった。


하나님께서는 극상품 포도나무, 샤인 머스캣이나 거봉 같은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극상품 포도나무가 튼튼하게 자라기 위한 모든 환경을 조성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들포도가 맺혔습니다. 최고급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모든 정성을 기울여서 키었는데, 결과적으로 맺힌 것은 짐승 사료로도 쓸 수 없는 들포도가 맺히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이사야 5장 4절~6절
“4.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5.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わがぶどう畑になすべきことで、何かわたしがしなかったことがあるか。なぜ、ぶどうがなるのを心待ちにしていたのに、酸いぶどうができたのか。
さあ、今度はわたしがあなたがたに知らせよう。わたしが、わがぶどう畑に対してすることを。わたしはその垣を取 り払い、荒れすたれるに任せ、その石垣を崩して、踏みつけられるままにする。
わたしはこれを滅びるままにしておく。枝は下ろされず、草は刈られず、茨やおどろが生い茂る。わたしは雨雲に命じて、この上に雨を降らせないようにする。」

하나님께서는 이를 무섭게 심판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밭의 모든 환경을 조성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좋은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서 어떤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런데 큰 빚을 졌습니다. 도저히 갚을 수가 없을 정도의 빚이에요.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사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취업도 할 수가 없지요. 그런 사람을 누가 써주겠습니까. 결국 파산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이 사람을 일으켜 세워야 하지요. 법적으로 볼 때 개인파산, 자기 파산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채무가 면제됩니다. 모든 빚이 해결돼요. 그러면 이제 그 사람은 다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모든 채무가 면제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 죄인이었습니다. 작은 죄를 지은 죄인은 자기가 얼마나 심각한 죄를 지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도 없이 반복해서 죄를 지어온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이는 자기가 무거운 죄인인지 아닌지조차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지은 죄를 알지 못합니다. 하물며 오늘 당장 세상을 떠나도 천국에 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럼 우리는 예외인가요? 아니요. 우리 스스로도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얼마나 많이 가족이나 이웃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모른 채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내 죄, 어둠 속에 있을 때에는 알지 못했던 내 죄가 햇빛을 쬐면 드러나듯 점점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제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나는 구원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해결해주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십자가에 못박히고 피를 흘리시면서 우리의 죄를 모두 완전히 해결해졌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 속에 예수님이라고 하는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렇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다면 극상품 포도가 맺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들포도가 맺혔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하는 포도밭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극상품 포도를 맺기 위해서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자, 두 번째 질문입니다. 이는 주관식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났을 때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창세기 3장 23절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神である主は、人をエデンの園から追い出し、人が自分が取り出された大地を耕すようにされた。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근원인 우리 마음의 땅을 갈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땅을 갈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과 말씀과 행함인 것입니다.


우선 믿음이라고 하는 고백이 필요합니다. 그냥 무작정 땅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을 주님께서 주시는 나무를 심기 위해 바치겠다고 하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땅을 갈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무엇으로 땅을 갈겠습니까. 설마 손으로 갈아요? 그러면 손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대로 갈아보지도 못하고 금방 엉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럼 총이나 칼로 갈아요? 연필로 갈아요? 아닙니다. 골로새서 2장 8절을 보시겠습니다.

골로새서 2장 8절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あの空しいだましごとの哲学によって、だれかの捕らわれの身にならないように、注意しなさい。それは人間の言い伝えによるもの、この世のもろもろの霊 によるものであり、キリストによ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땅을 갈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올바른 도구, 바로 괭이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 있는 지식이나 경험으로 있는 힘을 다 해서 갈려고 해 봤자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의 땅을 올바로 갈기 위해서는 올바른 말씀,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인 성경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갈아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이제 믿음이라고 하는 고백, 성경말씀이라고 하는 괭이가 준비되었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행함이라고 하는 경작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고백과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한 밭을 가는 일이 어디 한 두 번 괭이질을 하면 그만인가요? 아닙니다. 아침이고 밤이고 반복적으로 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괭이질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이제 단단했던 땅이 조금씩 부드러워집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크고 작은 바위나 돌멩이들이 튀어나옵니다. 잡초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런 것들을 그대로 놔두면 아무리 좋은 씨를 심어도, 아무리 좋은 나무를 심어도 다 말라 죽어버립니다. 이런 바위나 돌멩이나 잡초들을 쑥쑥 뽑아서 내버려야지만 보들보들하고 기름진 옥토가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마음이 이와 같은 옥토가 되면, 이제 극상품 포도를 심으면 극상품 포도가 나고, 극상품 야채를 심어도 극상품 야채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이것으로 끝인가요? 포도를 심었어요. 포도나 났어요. 포도를 먹었어요.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다면, 포도나무가 죽으면 이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교배를 시켜서 늘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8절
“8.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まず初めに、私はあなたがたすべてについて、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私の神に感謝します。全世界であなたがたの信仰が語り伝えられているからです。”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물이라 하더라도 작은 컵에 담아서 내버려 둬보십시오. 며칠 지나면 냄새가 나고 썩어 버리고 맙니다. 아무리 우리가 좋은 믿음이라 하더라도 우리 안에만 가두어놓는다면 이는 살아있는 믿음이 아니라 죽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이웃에게, 그리고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무리 겉으로는 믿음이 좋은 척을 해봐도, 아주 고집이 세요. 남의 말을 안 듣고 그 마음이 아주 단단해요.

또는 기도도 많이 하고, 방언도 많이 하고, 금식도 많이 하고 예배도 많이 드리는데 그 마음 안에 올바른 성경말씀이 없어요. 꿈 이야기를 하고 환상 이야기를 하고 예언 이야기를 하고, 도저히 그 마음 안에 성경 말씀이 없어요.

이렇게 된다면 그 마음은 단단해져서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올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보면 어떻습니까. 항상 마음이 아주 보들보들합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극상품의 포도는 언제나 입에 달기만 한 포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고난이라는 포도를 주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시련이라는 포도를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극상품의 포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마음을 항상 성경 말씀이라고 하는 괭이로써 매일매일 부지런히 행함이라고 하는 괭이질이 된 보들보들한 땅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극상품 고난을 심어도 극상품 은혜라는 열매가 맺히고, 극상품 시련을 심어도 극상품 평강이라고 하는 열매를 맺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극상품 고난과 극상품 시련을 주세요? 예, 그렇습니다. 고난과 시련을 주실 수가 있습니다.


욥기 23장 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しかし神は、私の行く道を知っておられる。私は試されると、金のようになって出て来る。

야고보서 1장 2절~3절
“2.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私の兄弟たち。様々な試練にあうときはいつでも、この上もない喜びと思いなさい。
あなたがたが知っているとおり、信仰が試されると忍耐が生まれます。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더욱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극상품 선물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신 우리는 성령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요 예수님의 것입니다. 우리 앞에 좌절은 없습니다. 절망은 없습니다. 오로지 은혜와 평강이 넘쳐날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고백과 말씀의 괭이로써 우리의 마음을 갈면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크고 작은 불신의 바위나 돌멩이들, 이 세상 근심걱정이라는 잡초들을 모두 깨끗하게 뽑아내 버리고는, 우리 일생 속에서 예수님이라고 하는 극상품 포도를 열매 맺고, 예수님이라고 하는 극상품 포도를 우리 이웃에게, 그리고 전세계에 널리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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