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7회 믿음과 소망
2020년 10월 25일 설교 (로마서 강해 8)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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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 신약 239페이지
“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1章17節
“17.福音には神の義が啓示されていて、信仰に始まり信仰に進ませるからです。「義人は信仰によって生きる」と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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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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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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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8번째 시간으로서 “믿음과 소망” 信仰と希望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성경구절은 한 구절입니다. 그런데 좀 말씀이 어려워 보입니다. 다시 한 번 볼까요?

로마서 1장 17절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福音には神の義が啓示されていて、信仰に始まり信仰に進ませるからです。「義人は信仰によって生きる」と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

이 구절을 이해하기 쉽도록 좀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볼까 합니다. 먼저 첫 부분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는 부분, 두 번째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첫 번째 부분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福音には神の義が啓示されていて)”라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넓게는 성경말씀 전체를 가리키고, 그리고 좁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친히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채찍에 맞게 하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게 하시고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이로 인해서 우리의 죄는 모두가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능력이요, 둘째로는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이라고 하는 책은, 이는 당연한 말씀입니다만 이 책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이 책을 이렇게 가슴에 싸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안이 임하는 것 같이 느껴지나요? 악한 영이 다가올 때에 이 성경책을 짜잔 하고 들이대면 마귀 사탄이 물러갈 것처럼 느껴지시나요? 그것은 진정한 성경의 능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 성경책을 우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 성경책은 그냥 종이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능력이 있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여기 안에 적혀 있는 그 말씀에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의 능력은 일반 교과서나 다른 교양서적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 책들에 적혀 있는 내용들은 모두 사람의 생각으로 사람이 쓴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습니까. 물론 모두 사람의 손으로 쓰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람의 생각으로 쓰인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17절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聖書はすべて神の霊感によるもので、教えと戒めと矯正と義の訓練のために有益です。
神の人がすべての良い働きにふさわしく、十分に整えられた者となるためです。

이 말씀의 뜻은 직접적으로 글을 쓴 것은 사람이지만 이를 쓰도록 하신 분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라고 하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성경 말씀에는 일반 사람의 말에는 없는 힘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13절
“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神のことばは生きていて、力があり、両刃の剣よりも鋭く、たましいと霊、関節と骨髄を分けるまでに刺し貫き、心の思いやはかりごとを見分けることができます。
神の御前にあらわでない被造物はありません。神の目にはすべてが裸であり、さらけ出されています。この神に対して、私たちは申し開きをするのです。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종이에 적힌 글자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떤 단순한 지식에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예리하고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감추려고 한 우리의 본 모습을 들춰내기도 하시고, 또한 우리 안에 있는 힘을 끌어내시기도 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면 우리가 변합니다. 우리 마음이 변하고 우리의 인생이 변하고 우리가 보지 못했던 하나님이 보이게 되고, 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의 앞길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면 이제 성경을 읽어도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그 말씀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성경구절을 많이 외우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아니, 그게 이상하다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정도로 말씀을 사모하는 모습은 정말로 본받을 만 하다고 하겠습니다만, 그렇다고 꼭 성경을 많이 외워야지만 말씀의 능력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인가요?

아휴, 나는 하루하루 바빠서 말씀을 외우기도 힘들어. 그럼 이제 난 틀렸나봐…….

그럼 인제 그런 분들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나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슨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그 교재에 있는 내용들을 많이 외우는 편이 좋겠습니다만, 성경은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 기억하시지요?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神は、実に、そのひとり子をお与えになったほどに世を愛された。それは御子を信じる者が、一人として滅びることなく、永遠のいのちを持つためである。

이 한 구절 가지고도,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묵상하게 되면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고, 우리 삶에 있어서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에는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뜻도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통해서 우리의 죄가 사해졌다면, 이제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할렐루야, 감사합니다……하고 인생을 보내면 그것이 다인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냥 무슨 어항 안에 있는 금붕어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한평생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그렇게 무참하게 죽이셨다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계획이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계획이 있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계획이십니까.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아무런 계획 없이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계획하셔서 태어나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그 계획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복음 전파라는 계획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しかし、聖霊があなたがたの上に臨むとき、あなたがたは力 を受けます。そして、エルサレム、ユダヤとサマリアの全土、さらに地の果てまで、わたしの証人となります。」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모두가 다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안수를 받고 난 다음에 전세계에 나가야지만 꼭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인가요? 물론 그와 같은 사명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받은 은사가 달라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13장 34절~35절
“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新しい戒めを与えます。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愛したように、あなたがたも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
互いの間に愛があるなら、それによって、あなたがたがわたしの弟子であることを、すべての人が認めるようになります。」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전도를 하기 위해서 사람들 귀찮게 따라다닐 필요가 없어요. 지금 이 시대처럼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질투 시기하고, 어떻게 해서든 지지 않고 이기려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이러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갈급하고 있는 것은 바로 서로에 대한 사랑인 것입니다. 바로 그럴 때 우리가 예수님 이름으로 우리 이웃을 서로 사랑하고 우리 이웃을 위해서 베푸는 모습을 그 사람들이 본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귀찮게 사람들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 믿으라고, 우리 교회 나오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 복음의 능력을 아는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얼마든지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 아니, 이는 권리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면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복음 전파라는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할 수 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다음으로 오늘 말씀의 두 번째 부분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 중반부에 보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信仰に始まり信仰に進ませるからです。)”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믿음에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까지 이루어진다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자, 오늘도 문제를 한 번 내겠습니다. 오늘 문제를 주관식으로 하면 좀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힌트가 있습니다. 끝까지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이라고 할 때 이와 반드시 함께 갖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더 쉽게 말씀 드리자면,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이것”도 함께 있다는 뜻이 되고, “믿음”이 없다면 “이것”도 없다는 뜻이 됩니다. 무엇일까요.

힌트는 고린도전서 13장 13절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こういうわけで、いつまでも残るのは信仰と希望と愛、これら三つです。その中で一番すぐれているのは愛です。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믿음”이라고 할 때 이와 반드시 함께 갖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정답……이라기보다는 제가 생각했던 답은 바로 “소망”입니다. 이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보면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その中で 一番すぐれているのは愛です。)>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사랑>만 강조가 되고 <소망>은 좀 홀대 받는 경우가 적지 않나 합니다만, 아닙니다. 이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선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こういうわけで、いつまでも残るのは信仰と希望と愛、これら三つです。その中で一番すぐれているのは愛です。)”라고 하는 말씀부터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한 번 로켓 발사에 대해서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로켓이 어떤 때에 활용되냐 하면 대표적으로 인공위성을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통신을 하기 위해서 통신위성을 발사할 때도 있을 것이요, 날씨를 관측하기 위해서 기상위성을 쏘아 올릴 때도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그 발사장면을 보신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우선 5, 4, 3, 2, 1 이렇게 카운트 다운을 한 다음에 어떻게 됩니까. 엔진에 불이 붙습니다. 그러면 이제 연기가 폭발하듯이 난 다음에 로켓이 하늘로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올라가면 어떻게 됩니까. 차차 올라가면서 1차로켓이 분리되고 2차로겟이 분리됩니다. 이는 쉽게 말하자면 연료통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무거운 본체를 하늘 높이 올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양의 연료를 필요로 하는데, 그 연료가 다 떨어지면 그건 이제 필요가 없게 되니까, 말하자면 빈 통부터 하나하나 분리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주공간에 올라가면 어떻게 됩니까. 이제 인공위성이 날개를 펴게 됩니다. 그 날개는 뭐냐 하면 태양에너지 패널입니다. 연료통은 지구상에서 우주공간에 도달할 때까지만 필요한 것이지, 이제 거기서부터는 연료통이 필요하지 않고 태양에서 오는 태양에너지를 연료로 삼아서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인공위성 발사를 생각할 때마다 대단히 영적인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믿음과 소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심어졌다는 것은, 이는 마치 엔진에 불이 붙고 천국을 향한 신앙생활이 시작한 것을 의미하지요. 이제 믿음이라고 하는 이름의 불꽃이 소망이라고 하는 연료를 태우면서 하늘 높이 천국을 향해서 올라갑니다.

하지만 믿음과 소망이 있다는 뜻은 다른 말로 하자면 무엇입니까. 로켓에 아직 불이 붙은 연료통이 달려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해요. 그렇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거기는 아직 우주가 아니에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믿음과 소망을 갖는 것이지, 이미 이루어졌다면 믿음과 소망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것이지요. 내가 가졌던 믿음과 소망이 현실이 되었다면 그 순간 믿음과 소망은 이제 더 이상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없어지나요? 아닙니다. 우리가 그 동안 믿어왔던 믿음과 소망이 현실이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믿음과 소망은 우리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무슨 야구나 축구 경기를 봅니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팀을 응원해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기에는 믿음과 소망이 있기 때문이지요.

내가 좋아하는 팀이 이길 것이다. 아니면 우리나라가 이길 것이다…… 라고 하는 믿음과 소망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응원하면서 보는 것이지, 절대로 이기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면서, 예를 들어서 이미 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그 녹화방송을 보면서 열심히 응원을 해요? 그런 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요? 예, 잘 보살펴드려야 합니다. 그건 정상이 아닙니다.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지금 세상에서 아무리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도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배님들을 보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배를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노아는 망설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지금까지 본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 큰 배를 몇 십 년에 걸쳐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노아는 좀 모자란 사람이었습니까? 아니에요. 창세기 6장 9절 중반부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ノアは正しい人で、彼の世代の中にあって全き人であった。)”
라고 기록합니다. 이는 무슨 말씀이냐 하면 쉽게 말해서 누구보다도 상식이나 교양이 있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졌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람이 그 크나큰 방주를 짓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믿음의 불이 소망이라고 하는 연료통에 붙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노아는 분명한 소망이 있습니다. 기대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나와 내 가족이 구원을 얻는다는 분명한 소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구원에 대한 소망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와 그 가족을 구원한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불꽃과 연료통이 올바로 작동하는 한 로켓은 틀림없이 우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불꽃이 꺼지거나 연료통이 도중에 떨어져 나가버린다면 그 순간 로켓은 상승을 멈추고, 곧바로 추락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 중에서 마지막 세 번째 부분을 보실까요?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義人は信仰によって生きる」と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

여기서 <의인>이라고 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그 원동력이 이 세상 재물이나 명예나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 말씀, 하나님 복음에 소망을 두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소망의 반대말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절망입니다. 우리는 이 절망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절망은 무엇으로부터 온다고 여러분께서는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의심에서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는 기도할 때 막 악마야 물러가라!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 막 소리를 질러가면서 오랫동안 기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그래야 할 때도 있겠지요. 악마나 사탄은 우리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너무 흥분하지 말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그리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악마나 사탄 이전에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어쩌면 의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의심이 생기면 어떻게 됩니까. 아,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 걸까.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맞는 걸까.

이러한 의심이 우리 마음 안에 자리잡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의심에 한 번 사로잡히게 되면 불안해집니다. 지금까지 하나님만 믿고 살아왔는데, 예수님만 믿고 살아왔는데, 어쩌면 모든 것이 거짓이었을 수도 있어. 내가 헛것을 믿었는지도 몰라.

이처럼 불안이 쌓이면 이제 불만이 됩니다. 하나님이 있기는 뭐가 있어. 예수님은 무슨 예수님이야. 내가 그 동안 교회에 다닌다고 들인 시간이나 노력, 교회에 낸 헌금이 아깝다……. 이렇게 되면 이제 겉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곧바로 다가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두려움입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 이제 어떻게 하면 좋아. 그러면 이제 마지막에는 절망입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 믿을 것은 하나도 없고, 이제 내 인생은 끝난 거야…….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안 될 것 같으십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했었다 하더라도, 누구나가 이렇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한 가지를 더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과 소망>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 사이에 있는 것은 바로 <환난(苦難)>인 것입니다.

로마서 5장 3절~4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로마서 5장 3절~4절
“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それだけではなく、苦難さえも喜んでいます。それは、苦難が忍耐を生み出し、
忍耐が練られた品性を生み出し、練られた品性が希望を生み出すと、私たちは知っているからです。

우리가 아무리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살려고 노력을 해도, 때로는 환난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환난이 찾아온다고 해서 소망을 버리겠습니까. 천국을 버리겠습니까. 아니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환난 중에서도 믿음만 있으면 여기서 인내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내는 연단을 통해서 우리를 더욱 강하게 해줄 것이며, 이를 통해서 우리는 훨씬 더 큰 소망을 갖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무리 노련한 운전자라 하더라도 운전할 때 손을 놓고 운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요즘은 무슨 자동운전기능이라는 것이 있는 차도 있다고 하지만, 그런 기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놓고 운전을 한다면 이는 노련한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운전이지요.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狭い門から入りなさい。滅びに至る門は大きく、その道は広く、そこから入って行く者が多いのです。
いのちに至る門はなんと狭く、その道もなんと細いことでしょう。そして、それを見出す者はわずかです。


두 손을 놓고 운전해도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면 얼마나 넓은 문이겠습니까. 하지만 그 문은 절대로 들어 가서는 안 되는, 죽음으로 들어가는 문,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성경은 이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잠언 4장 27절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右にも左にもそれてはならない。あなたの足を悪から遠ざけよ。

그렇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우리는 믿음과 소망의 운전대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인의 삶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사야 40장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이사야 40장 31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しかし、主を待ち望む者は新しく力を得、鷲のように、翼を広げて上ることができる。走っても力衰えず、歩いても疲れない。

이제 우리는 불꽃을 꺼뜨릴 수가 없습니다. 연료통을 떨어뜨릴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라는 이름의 불꽃으로, 소망이라는 이름의 연료를 불태우며, 마침내 독수리처럼 날개치며 올라가는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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