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욥기를 보면 이처럼 하나님을 들먹이면서 비판했던
욥의 친구들에게 하나님께서 꾸짖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함부로 말한 욥의 친구들 세 명에 대하여 엄한 말로 혼을 내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충고나 비판으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충고나 비판으로 거리를 좁힐 수가 있었다면,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오셔서 충고나 비판과 비난만 하시고 가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이는 바로 순종이자 희생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인하여 스스로를 희생제물로 내놓으셨던 것입니다.
이 희생의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희생으로 말미암아 용서, 죄 사함이 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랑으로 우리는 소망을 가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가 그대로 있을 때에는 소망이 없었으나, 죄 사함이 임하면서 우리는 이제
천국을 꿈꿀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충고와 비판은 단 한 사람도 위로를 줄 수가 없습니다. 충고와 비판, 비난은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다 합니다. 하지만 충고와
비판보다도 순종과 희생을 먼저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순종과 희생이라고 해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리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죽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자기 교만함을 죽여야 합니다. 자기 고집을 죽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순종과 희생을 위한 출발점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희생과 순종은 다른 게 아닙니다. 상대방의 마음,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이 되는 것이 순종이고 희생인 것입니다. 그것이 또한 사랑인
것입니다.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은 마귀가 아닙니다. 단지 마귀에 속아 넘어간 사람일 뿐인 것입니다.
그 사람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게 될 때 진정한 순종과 희생이 싹트는 것입니다. 진정한 용서와 사랑과 소망이 나오는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줄여주신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줄여주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스스로의 희생과
순종으로, 십자가의 용서와 십자가의 사랑, 그리고 천국을 꿈꿀 수 있는 소망을 널리 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